탈주범과 경찰과 시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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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며칠동안 세인을 놀라게 하고 시정을 불안속에 몰아넣었던 탈주범정건은 다행히도 후속사건 없이 자수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탈주와 자수라는 센세이셔널한 측면만을 보고 끝내기엔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너무도 많다. 이 기회에 관계당국은 물론 시민들은 사건의 시말을 반추해볼 필요가 있을 것같다.
어떻게 해서 법정의 범인들이 그처럼 어이없게 탈주할수 있었는가에 대한 시비는 이미 여러모로 제기되었으므로 논외로 하고라도 말이다.
문제는 우선 한사람도 아닌 다섯사람이 무려 5일동안이나 서울장안을 집단으로 활보할수 있었던 그 상황에 있다. 「물샐틈없이 펴놓았다던 수사망」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초동수사에서부터 주범자수후인 9일하오 서울불광동일대의 수사에 이르기까지 범인들의 발길에 거침이 없었다는 사실에는 아연해질 뿐이다.
또한 검삭·검문을 강화했다고 하나 아무런 단서조차 잡지 못했다는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물론 부족한 인력·장비·수사비등으로 광성을 수사하는데 경찰의 애로가 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경찰의 추적이 두렵고 궁극적으로는 죄를 짓고 갈곳이 없었다는 범인들의 초조감이 끝내 자수의 길을 찾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술한 수사망이 이번 사건을 통해 안스러웠던 것은 또다른 범죄의 해결에 전철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우려때문이다.
또하나 이번 사건이 제기하고 일깨워주고 있는 문제는 수사진을 나무라기에 앞서 시민의 범죄방지결의 내지는 고발정신의 결여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범인들이 닷새동안에 벌인 도피경로를 훑어보면 가는 곳마다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예금을 찾은 은행, 금반지를 맡긴 전당포, 여러 곳의 숙박업소, 식당등. 범인들이 큰탈 없이 거쳐간 곳들이다.
그동안 연일 매스컴에서 대서특필하면서 범인의 인상착의, 특징등을 보도했음에도 단 한건의 제보가 없었다. 제보는 커녕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이고 한번쯤 의심하고 넘어간 시민조차 없었던 것같다. 그저 흥미위주의 관객에 머물러 있었던 것같다.
사건이 끝난 후에도 일체 무표정하게 사후통보조차 하지 않는 현상은 기이한 감마저 들게 한다.
범죄의 예방이나 해결은 수사당국만의 책임이라고 할수 있는 것인가.
그보다는 시민 스스로가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하며 범죄행위에 대항하는 꿋꿋한 마음가짐이 있어야할 것이다.
흔히 바로 이웃에서 자행되는 범법작태를 못본체하려는 소시민적 소극성은 이런 상황을 빚어낸 것도 같다.
냉담한 세속인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날로 그런 성향이 심화해가는 느낌마저 들어 개탄을 금할수 없다.
공동생활의 질서를 파괴하려는 악의에찬 기도는 시민이 다함께 대처하는 적극적이고 협조적인 공덕심을 발휘할 때 막을수 있다.
국민생활이 다양해질수록 상호협력하고 보완해 나가야만 건전한 사회기풍이 자리잡게 되고 생활환경도 깨끗해진다는 것을 다시금 새겨야한다.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에 앞서 우리는 거듭 우리의 생활자세를 반성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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