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성] 다이아몬드에 압축된 지구촌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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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따르면 요즘 국제 보석재벌들의 꿈자리는 뒤숭숭하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라는 20세기 가장 유명한 광고문으로 떼돈을 챙겨온 독점업자들 사이의 악몽이다. 사람들 귓전에 속삭여온 광고 메시지대로 다이아몬드가 ‘사랑과 헌신의 맹세’이기는커녕 피의 다이아몬드(blood diamonds)라는 실체가 속속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보는 이의 혼이 빠질 정도로 잔혹스러운 일들이 벌어졌고, 그건 다이아몬드 때문이다. 당연히 ‘로맨스를 파는 사업’에 심각한 위협이다. (내전에서) 상대의 칼에 양팔 잘린 아프리카인들 모습은 다이아몬드 TV 광고와 어울리지 않는다. 업계의 어떤 사람은 보석광고 말미에 난데없이 ‘사지절단은 영원히’라는 문구가 등장하는 악몽을 꾼 적도 있다.”(183쪽)

『다이아몬드 잔혹사』는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분쟁의 현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취재 역량과 글솜씨가 어우러진 이 책은 아프리카 서부 시에라리온에서 이 광물을 둘러싼 부패정부·반군들 사이의 ‘묻지마 전쟁’, 여기에 뒷돈을 대는 다이아몬드업자들의 파렴치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불과 4∼5년 전까지 벌어졌던 현실이다.

저자는 피의 다이아몬드에 관한 추악한 사실들이 지구촌에 알려지기 시작한 1999년 시에라리온을 찾는다. 그곳은 “폭력·가난·불행이 판치는 무주공산이자, 모든 것이 제 궤도를 벗어난”(23쪽) 생지옥이었다. 미국 다이아몬드의 80%를 대는 이곳은 아프리카의 부자나라여야 옳다. 그러나 인구 500만명이 유엔 제정 인간개발지수의 꼴찌고, 성인남자 4000명이 팔다리가 잘려 발가락으로 투표를 해야하는 모순은 무엇 때문일까?

그 묵시록의 구조는 세계 다이아몬드를 싹쓸이하는 보석재벌 드비어스에 대한 취재를 거쳐 총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시에라리온 정부와 반군들은 용병회사를 고용해 살인극에 열중하고 있고, 다이아몬드는 고가행진을 거듭하는 모순 사이에는 국제적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인간 탐욕에 대한 도덕적 고발 만은 아니다.

바다 저편의 분쟁이란 오늘 우리의 현실과 엮여있다는 ‘일상 속의 국제정치학’으로 읽힌다. “시에라리온은 이제 더 이상 국지적 지역분쟁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려줬다. 어쩌면 그런 분쟁은 전에도 존재한 적이 없다”는 저자의 맺음말이 여운으로 남는다. 현재 시에라리온은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으로 잠시 평화가 깃들었다지만, 구조가 변한 것은 없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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