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서서 버스 타기(지영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중국 신문을 보니 대북시장의 아침 첫 일과는 버스정류장의 줄서기를 돌아보는 것이라 한다. 우리도 요즈음 줄서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지금은 줄서기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버스를 타 본 사람이면 다 안다. 우선 기다랗게 늘어진 버스 정류장 가운데 그럴싸한 자리를 어림잡아 선다. 그러고는 달려오는 수많은 버스를 지켜보다가 자기가 탈 노선 번호를 확인한다. 그 차의 속도와 거리, 앞차의 수, 앞차에서 내리는 사람의 수를 빨리 헤아리고 나서, 차를 탈수 있을만한 위치를 향해서 앞으로, 또는 뒤로 잽싸게 내닫는다.
이것은 정말 초를 다투는 장애물경주다. 가까스로 타고나면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생각하면 자존심이 상한다. 사람이 왜 이렇게 대접받아야하나.
당국에서도 연구는 하고 있다. 서울역이나 남대문·동대문처럼 노선이 많이 몰리는 곳에는「방면」으로 묶어 정류장을 만들었다. 버스를 타기가 보다 수월하게는 되었지만, 줄서기 하는데는 도움이 안 된다. 방면이 비슷해도 같은 노선이 아니면 함께 줄을 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남시나 의정부시로 떠나는 버스정류장에는 끝이 안보이도록 기다랗게 줄을 서고 있다. 질서정연하게, 또 의젓하게 버스 타는 모습이 참 부럽다. 그러나 그것은 줄서기를 하고 기다리면 버스가 그 앞에 와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노선마다 정류장을 따로 만들고, 줄서기를 하면 된다. 지금보다 몇 배의 정류장이 필요할 것이다. 아마 4대 문안의 간선도로는 모두 버스정류장이 되어야할지 모른다. 얼른 생각하면 이상하겠지만 버스정류장이 쭈욱 이어있다고 해서 나쁠 게 없다.
중앙청 앞에서 광화문·남대문 다시 서울역·남영동까지, 그리고 독립문에서 서대문·광화문·동대문, 다시 신설동·청량리까지 쭈욱 이어 버스정류장을 만들 수 있다. 단번에 하기 어려우면 가능한 곳부터 시험해 봐도 된다.
그리고 차를 탈 때는 뒷문 하나만 사용한다. 기껏 줄서기를 잘하고 있다가 차가 닿는 순간 앞문·뒷문으로 몰리면 허사가 될 테니까. 탈 때 차표를 내고 내릴 때는 앞문·뒷문을 자유로이 사용한다. 이렇게 제도화하면 줄서기가 성공할 것이다.
우리는 물이 아래로 흐르는 성질을 알고서 둑을 쌓고 물길을 튼다. 캠페인을 벌이기 전에 쉽게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한다. 한사람 한사람의 호응도 중요하지만, 특히 관계기관·단체에서 좋은 방안을 강구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북시는 줄서기 잘하는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그·시장의 일과는 줄서기를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줄서기는 현재의 여건에서 가장 사람답게 차를 타는 방법이다. 사람 대접받기 위해 줄서기를 하는 것이다. <단국대교수·중문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