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도 분명치 않게 항상 배가 묵지근… 신경성 소화기 질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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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별다른 이상이 없는데도 소화가 잘 안되고 배가 묵지근하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병원을 찾아가도 『별다른 이상을 발견할 수 없다』는 대답 때문에 홀가분해질 수 없다는 사람이 많다. 이런 환자의 대부분은 심인성(신경성)에 의한 증상일 경우가 많다. 신경성이란 증상이 없는데도 그렇게 느낀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신이 원인이 되어 그러한 질병이 생긴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 신경성 소화기계 질환이 증가추세에 있는데 그 원인과 증상, 대책 등에 관해 서울대학병원 최규완 박사(소화기내과)에게 물어본다.

<원인과 체질>
사회구조가 공업화되는 과정에서 감정이 메말라지고 좀 더 경쟁적인 형태로 변모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핵가족화 등이 겹쳐 현대인이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점차 커지고 있다.
정신적인 불안요소는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데 큰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특히 소화기 계통 질환에서는 더욱 그렇다.
서울대학병원의 경우 70년 초에는 소화기관 이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40∼50%가 신경성이었으나 요즘은 70∼80%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질병에서 차지하는 정신의 비중이 커진 것이다. 외국에서는 여자가 대부분이지만 우리나라는 남녀가 비슷하다.
이러한 신경성 소화기병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보면 체질적인 공통점이 발견된다.
대부분 마르고 신경질적이며, 잠을 잘 못 자거나 식욕이 없고, 조그마한 일에도 가슴이 잘 두근거리고 땀을 흘린다.
또 성격이 너무나 꼬장꼬장해서 어떠한 문제가 생기면 그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많다. 이런 사람들 중에서는 자신의 증상을 자세하게 적어 가지고 올 정도로 세심한 사람도 있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자신에게 불이익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적당히 자기합리화 시킨다거나 외부로 쏟아내지 못하고 내부에 쌓아 가는 사람들에게 환자가 많다.
직접적인 원인을 보면 남자는 ▲승진누락 ▲시험을 앞둔 수험생 ▲직장에서 불만 ▲택시운전기사 등의 순이며, 여자는 ▲고부간의 불화 ▲계가 깨지거나 경제적인 손실 ▲자녀들의 시험실패 등의 순서로 되어있다.

<증상>
증상은 상부소화기관(위)과 하부소화기관(장)의 이상이 다르게 느껴진다.
순전히 정신에 의한 기능성 위장장애(위산분비 과다·위장 운동장애) 등은 윗배가 아프고 속이 쓰리며, 트림이 자주 나고, 밥맛이 없고 구역질이 날 때가 있다. 이때는 한가지 증상만 날 수도 있고 몇 개가 겹쳐서 나기도 하는데 속이 비게 되면 더욱 쓰리다.
실제로 소화기관이 헐게되는 소화성궤양(위궤양·십이지장궤양)은 기능성 위장장애가 더욱 진행되어 나타나는 수가 많으나 다른 이유로도 생긴다. 증상은 상복부의 팽만감으로 항상 위 속이 차있는 듯 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장에서는 정신적으로 오는 기능장애인 과민성 대장을 들 수 있다. 과민성 대장은 이유 없이 좌하복부나 배꼽주위가 경련성으로 쥐어뜯는 듯이 아프다가 씻은 듯이 없어진다. 이러한 통증은 배변 후는 어느 정도 완화된다. 아픈 정도나 시간은 몇 초에서 2∼3분 등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밖에 하복부에 팽만감을 느끼며, 변비나 설사가 나타나는 환자 중 변비가 80%로 훨씬 많다. 때로는 변비와 설사가 교대로 나타난다.
장의 기질성 장애인 궤양성 대장염은 과민성 대장이 진행되어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증상은 하복부가 쥐어뜯는 듯이 아픈 것은 비슷하나 대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이 다르다. 그러나 대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원인은 치질·암·궤양성대장염·이질 등의 순이어서 혈변만을 갖고 궤양성 대장염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대책>
이 질환의 예방이나 치료를 위해서는 정신·환경의 개선, 음식의 조절과 의사의 선택이라는 점에 유의해야한다.
사실상 신경소화기질환을 일으킨 사람에게 정신적인 자세를 바꾸라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따라서 속해있는 세계에서의 환경의 변화를 추구해 보라고 권할 수밖에 없다.
음식은 일반적으로 자극성(맵고 짠 것 등)이 심한 것은 피하고 담배를 끊어야 한다. 술은 과음이 아니라면 크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다.
위장쪽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우유·아이스크림 등 비교적 부드러운 음식을 섭취하되 양을 적게 하는 쪽이 좋다.
장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섬유질이 많은 채소·보리밥 등 약간 거친 듯한 음식이 좋으나 위와 장이 함께 이상을 보이는 사람은 부드러운 음식과 거친 음식의 밸런스를 맞추어 주어야한다.
의사의 선택은 병을 치료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의사의 선택은 자신이 접근하기 쉽고 관심과 시간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을 택해야 한다. 물론 소화기 계통에 정통해야 하겠지만 신경성 소화기 병에 한해서는 「고명한 의사」보다 환자를 이해해주는 의사가 필요하다.
이 병은 환자가 자신의 병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치료가 되는데, 5∼10분간 의사를 만나는 것만으로는 환자와 의사간의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없어 치료를 어렵게 한다.
그 때문에 『유명한 의사란 의사는 다 만나 보았지만 신경성이란 외에는 원인을 딱 집어내지 못하더라』는 얘기가 나오게 되고, 환자는 환자대로 병원을 전전하는 사태가 생기게 된다. 이 병은 신뢰하는 한 의사에게 자신을 맡길 때만 치료가 가능한 병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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