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청와대에 뻗치는 유혹의 손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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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사촌임을 사칭해 공짜술을 얻어먹고 다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적발됐다. 술집 여사장이 제보했다.

수사기관에 넘겨져 구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유사 사례도 있는데 이는 盧씨의 경우 현(鉉)자 돌림이 많은 것과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단일 본관의 희귀 성(姓)을 지닌 청와대 비서관이 있다. 요즘 "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일면식이 없던 고위공직자나 ○○공제회 등의 간부들이 안부전화를 걸어오고 심지어 찾아오기까지 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새 청와대는 21일로 출범 56일째를 맞는다. 통념대로라면 '집권 초 청와대의 힘'이 절정으로 치달을 시점이다. 그래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이어진다.

청와대의 한 행정관 부인이 전세 아파트를 옮기려고 동네 부동산 업소를 찾았다. 업소주인은 "혹시 바깥분이 청와대에 들어가시지 않았느냐"고 친근감을 표시해 왔다. 섬뜩해진 행정관이 업소 주인에게 물어보자 "아는 형사가 귀띔해 주더라"고 했다.

*** 직원들에 교묘한 줄대기 공세

청와대 직원들에 대한 접근도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교묘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바뀌고 있다. 한 비서관은 썩 가깝지는 않은 인사와 한정식집에서 1인당 2만5천원짜리 식사를 하고 나왔다.

상대방이 갑자기 "택시비나 하라"며 5만원을 건네기에 이 비서관은 거절했다고 한다. 학교 선배임을 자처하며 다른 비서관을 찾아온 사람은 오렌지 주스를 한 박스 들고 왔다. 비서관은 '바늘도둑 소도둑 되는 길'이라고 여겨 되돌려 보냈다고 한다.

386실세로 신문에 사진이 자주 실린 한 비서관은 고교 시절 미팅을 했던 여성이 "한번 만나달라"고 해 진땀을 흘렸다. 또 다른 실세 비서관은 "미주 중앙일보에서 네 사진을 봤다"는 학교동창이 만나달라며 한국을 찾아오기도 했다.

*** 자칫 틈새 보이면 부패로 연결

학교 선후배.지인.친인척 등의 각종 청탁과 민원, 스폰서(자금 후원자)가 돼주겠다는 은근한 유혹들이 지금 청와대의 틈새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부패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다. 권력과 통하면 만사형통이던 관행은 부패를 키운 토양이 되어왔다. 이호철(李鎬喆)민정비서관은 한 세관 직원으로부터 "참깨가 무사히 통관됐다"는 뜬금없는 전화를 받았다.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이 직원은 놀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발신전화 추적 끝에 李비서관을 사칭한 범인을 잡았다. 우리의 현주소는 실세 사칭에는 물론이고 공치사를 해온 공무원의 행태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노무현 정부의 상당수 청와대 직원은 1호봉으로 출발한다. 대부분 신규 채용인데 공무원이 아니면 좀체 이전 직장의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급료는 같은 직급의 다른 공무원들에 비해 적다. 한 비서관은 "전부터 알던 사람들과의 모임에 안 나가면 '건방져졌다'고 하고, 나가서 소주잔이라도 기울이다 보면 생활이 어려워진다"고 토로한다.

이 같은 처우 문제는 새 정부의 불안요인이기도 하다. 한 가정의 가장인 이들이 항상 '유혹에 약해질 수 있는'환경에 방치돼 있기 때문이다. 둑이 한번 허물어지면 그 피해는 수천억원에서 망국(亡國)에까지 이를 수 있는데 말이다.

최훈 청와대 출입기자

<바로잡습니다>

4월 21일자 10면 '청와대에 뻗치는 유혹의 손길'제하의 기사 중 세관 직원이 이호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참깨가 무사히 통관됐다"고 말했다는 대목과 관련, 관세청은 "자체 확인 결과 세관 직원은 '지난번에 통관 확인 요청한 건과 관련해 알려드리려고 전화했다'고 확인 전화를 한 것으로 공치사를 하려 했던 게 아니며, 수입업자가 李비서관을 사칭해 부당 통관을 시도하려던 참깨는 전량 압수조치됐다"고 밝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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