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고용허가제'가 中企 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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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우리나라에는 지난 2월 현재 합법.불법을 합해 약 36만7천명의 외국 인력이 체류하고 있다. 전체 취업자의 1.7%, 임금 근로자의 2.6%에 해당한다. 또 외국 인력의 78%인 28만8천명은 불법 체류자 신분이다.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외국 인력이, 그것도 대부분 불법 체류 형태로 일하고 있는 것은 중소기업의 인력난 때문이다. 일부 중소기업은 외국 인력 없이는 생존 자체가 어려운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둘러싼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에서는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중소기업을 죽이는 제도라고 주장하며 결사반대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가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에 도움을 주고 경쟁력을 강화시키는데 기여한다면 가능한 빨리 이 제도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제도가 중소기업의 생산활동에 꼭 필요한 외국 인력을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만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지에 논쟁의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산업연수생제도를 확대하자고 주장한다. 현재 산업연수생은 3만2천명에 불과하고, 연수취업자 1만2천명을 합해도 5만명이 채 안된다. 이 정도 규모의 산업연수생을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에 필요한 30만명 규모로 확대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선택의 범위는 30여만명의 외국인력을 불법 취업자 신분으로 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고용허가제를 도입하여 합법적으로 활용할 것인가로 좁혀진다. 그리고 문제의 핵심은 둘 중 어느 것이 과연 중소기업에게 이로운가 하는 점이다.

우선 어느 제도가 중소기업에게 보다 안정적인 인력 공급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 따져보자. 현재와 같이 불법 체류 근로자로 활용하면 외국인 노동자가 한 기업을 떠나서 다른 기업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외국인노동자들은 한국에 취업하기 위해 자기 나라 임금의 수십 배에 이르는 평균 3천9백30달러의 엄청난 입국비용을 치르고 왔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월급을 더 주는 회사가 있다면 야반도주를 해서라도 옮겨갈 수 밖에 없다. 기업이 이를 막으려면 월급을 올려주거나 아니면 여권을 빼앗아두는 수 밖에 없다.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국내 인력을 고용하기 어려운 기업이 외국인 노동자 채용허가를 얻은 경우, 신뢰할 수 있는 공적 기구를 통해 필요한 기능과 자격을 갖춘 외국 인력을 골라서 채용할 수 있게 된다.

또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 기업의 파산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에 들어올 때 고용계약한 기업을 절대로 이탈할 수 없게 된다. 또 정부가 행정적으로 이를 철저히 감독하게 된다.

둘째로 고용허가제가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고용허가제로 인한 인건비 상승효과가 거의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외국 인력 시장은 불법이지만 일종의 경쟁시장이다. 그리고 중소기업의 인력난 때문에 상시적인 초과수요 상태에 있다. 초과수요 상태의 경쟁시장에서는 당연히 임금이 계속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최근 크게 상승하여 내국인근로자 임금과 비슷하게 되었다.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 결정되고 자국에 있는 다른 수많은 한국 취업 희망자와 경쟁하게 된다.

즉 고용허가제 하에서는 초과공급 상태의 노동시장이 형성되고, 이는 임금수준을 내리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외국인노동자에게 노동법이 적용되면 노사분규를 야기하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무노조 사업장인 중소기업에 취업하고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갱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집단 노사분규를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고용허가제는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에게 필요한 시기에, 자격과 기능을 갖춘 외국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줄 수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중소기업이 앞장서서 이 제도의 도입을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원덕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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