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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투자자 '홀로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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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개인투자자들의 '외국인 따라 하기' 관행이 깨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반등장에서 개인들이 외국인투자자들과 정반대 매매전략을 취해 짭짤한 수익을 올린 때문이다.

그동안 개인들이 국내 증시를 좌지우지하는 외국인들의 매매를 따라 한다며 이미 오른 주식을 샀다가 주가가 떨어진 뒤에 팔아 손해를 보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홀로서기에 성공한 개인들=무엇보다 주식을 사고 팔았던 시점이 절묘했다. 개인들은 종합주가지수가 515선으로 떨어진 지난달 17일을 전후로 본격적인 주식 매수에 나섰다. 이 시점을 바닥권으로 판단했다는 얘기다.

특히 3월 26일부터 지난 3일까지는 7거래일 연속으로 순매수하는 왕성한 식욕을 보였다. 하루 2천억원 이상씩 순매수한 날도 두 차례나 있었다. 개인 매수를 발판 삼아 주가지수가 슬금슬금 올랐다. '외국인들이 하루 1천억원씩 1주일은 순매수해야 주가가 오른다'는 증시 속설이 무색해진 것이다.

반면 외국인들은 비슷한 시기에 주식을 처분하는데 주력했다. 3월 말 이후엔 외국인들이 하루 1천억원이 넘는 주식을 나흘 연속으로 매도해 '셀 코리아(Sell Korea)'가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기관투자가들 역시 주식을 팔기에 급급했다. 가끔씩 순매수를 기록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 주가지수선물과 연계된 프로그램 매수였다.

수익률 게임의 절정은 개인들의 매도 전략에서 나타났다. 이달 초 주가지수가 600선에 다가서자 개인들은 차분하게 차익실현 전략으로 대응했다. 이전 같으면 주가상승기엔 '대박'을 꿈꿨겠지만 이번엔 적더라도 일단 수익을 내는 게 목표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15일 이후 미 나스닥지수가 연이어 오르는 데도 개인들이 매도에 주력하자 증권가에선 이참에 한.미 증시의 동조화 고리마저 깨지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에 비해 외국인.기관은 개인들이 이익을 챙기기 시작할 무렵에야 '뒷북' 매수에 나섰다. 이들이 주식을 사면서 주가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됐고 개인들이 차익을 챙기는데 더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

◇개인들, 왜 변했나=세가지 변수가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우선 과거 외국인 눈치를 보다가 손해를 봤던 개인들의 학습효과가 누적된 가운데 주가가 바닥권까지 떨어져 있었고, 북한 핵.카드채 문제 등 한국 증시를 괴롭힌 고유 악재들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는 것이다.

한화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개인들은 '주가가 충분히 싼 상황에서 더 떨어져 봤자 크게 손해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카드채.SK사태.북한 핵 문제 등으로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李센터장은 "실적이 좋은 중저가 종목별로 순환매가 일어나 개인들이 투자하기에 안성맞춤인 상황이 연출됐다"고 말했다.

마이다스에셋 자산운용 조재민 사장은 "주가가 500선으로 밀리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경험이 작용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번에 재미를 본 건 일반적인 개인들이 아니라 장세변화를 선도하는 '스마트 머니'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하락기에 위험을 떠안을 각오를 하고 10~15% 정도의 수익률을 노리는 개인들이라는 것이다. 삼성증권 오현석 연구위원도 "최근 활발히 주식을 매매한 개인들은 증시 움직임에 후행하는 이른바 '아줌마 부대'가 아니다"고 말했다.

역설적이지만 불안한 금융시장도 개인들의 과감한 매수에 도움을 줬다. SK.카드채 사태로 머니마켓펀드(MMF)에서 빠져나온 돈이 주식시장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개인들의 주식투자 밑천인 고객예탁금은 지난달 2조원 가량 늘었다.

그러나 굿모닝신한증권 김학균 연구위원은 "1조원을 넘은 프로그램매수 잔액이 청산될 경우 매물을 누가 받아주느냐가 문제"라며 "다시 외국인을 바라봐야 하는 처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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