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청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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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레이건」대통령은 70대 노인 같지않다. 지난2월6일 고희를 넘긴 그는 폐에 탄환이 박히는 총상을 입고도 16시간45분만에 한 법안에 서명을 할 수있었다. 필체도 또박또박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3시간의 수술을 받았었다. 이틀뒤에 벌써 병실산책을 했다. 한 의사는 똑같은 상처를 가진 환자의 경우 2주일쯤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레이건」은 그 이전에 퇴원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상처의 경중에 따라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레이건」은 맹장을 수술한 환자와는 다르다. 그는 총격과 위격을 함께 받았으며, 더구나 격무에 쫓기는 직책에, 70노령이다. 지금의 회복세로 보면 장년이나 다름없다.
비결은 낙천성인 것같다. 그는 생명을 위협하는 변고를 당하고도 줄곧 조크를 잊지 않았다. 보호원이 그를 차에 우악스럽게 밀어넣자, 새옷이 구겨질까봐 걱정 했다는 정도다.
집도를 하려는 의사들 보고는「여러분, 모두가 공화당원이겠지요?』라는 절묘한 농담을 던졌다. 의사들은 『오늘만은 모두 그렇습니다』고 응수했다. 역시 타고난 정치인 같다. 자신의 위기를 역용하는 위트가 놀랍기만 하다.
보좌관에게도 그런 여유를 보였다. 한 보좌관이『정부의 일들은 혼란이 없읍니다』고 보고하자,『아니…내가 그런 말을 듣고 좋아할 줄 아나?』 하고 대소 했다.
모두 응접실 아닌 수술실과 응급 환자실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그 경황에 이런 여유와 유머를 갖는다는 것은 범상한 노릇이 아니다.
「레이건」의 평소 건강상태는 완벽했다. 선거운동 중 그의 노령을 빈정대는 정적들을 물리치기 위해「레이건」 은 자신의 건강상태를 공개한 일까지 있었다.
6명의 주치의를 옆에 앉혀놓고「뉴욕·타임즈」지의 의학기자「로런스· K· 울트먼」을 불러 섬세한 질문을 던지게했다. 그 기자역시 의학박사였다. 자기의 건강을 이처럼「공인」받은 것이다.
1967년, 56세땐 전립선수술을 받은적이 있었다. 그의 건강에 작은 결함이 있다면 두 귀가 어두운 정도다. 「레이건」은 어느 액션영화에 출연했을 때 가까운 거리에서 38구경 피스톨을 쏘아대, 그뒤로 귀를 먹었다고 한다.
「레이건」의 수명은 보험통계방식에따르면 80.5세. 대통령 임기는 문제없다.
각설하고,정치인쯤 되면 이만한 스케일과 유머와 금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사실 「레이건」은 배우의 이미지를 씻어버리기 어려웠는데,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그런 인상은 많이 씻겨질 것같다. 미국과 같은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이 된다는 일은 배우가 무대에 오르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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