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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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천천히 망하려면 운수업을 하고 한꺼번에 망하려면 국회의원에 출마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거에서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
「새 시대」「공명선거」를 표방하고 있는 이번 총 선에서도 여전히 돈은 위세를 떨치고 있다.
요즘 각 정당의 사령탑에 걸려 오는 후보자들의 전화는『자금이 떨어졌다.『탄을 보내 달라』와『경쟁후보자가 돈을 물쓰듯하니 못쓰게 조치를 강구해 달라』는 것이 대부분.
중앙선관위가 정한 법정경비는 평균 5천만 원 선, 그러나 이 정도가 적정 선이라고 보는 후보는 별로 없다.
대도시의 35개 동에 당원 l만 명을 확보하고 있는 여권후보의 조직관리비를 보자. 이 후보의 기간조직은 35개 동 책·2백 개 투표구 책·8백 개 통보·3천 개 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금을 한번 푸는데 동 책 l인당 10만원(3백50만원), 투표구 책 5만원(1천만 원), 통 책2만원(1천6백 만원)씩 주어 모두 2천9백50만원이 나간다. 반 책에게까지 1만원씩(3천만 원)을 주면 도합 5천9백50만원이 든다.
당원 1만 명 중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4천35명을 움직이는데 이 정도고 당원 모두가「돈 냄새」를 맡게 하자면 약1억 원이 날아간다. 확실히 당선하려면 이 같은 규모의 투전을 선거기간 중 3, 4회는 해야 하고 게다가 한끼 당 l천∼2천 원씩의 밥값이 드는 당원단합대회를 동마다 치러야 한다.
물론 모든 후보에 이 방식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도시와 농촌이 액수가 다르고 정당간 당원숫자에도 큰 차이가 난다. 그러나「5당4락」이니 하는 말이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큰 정당은 조직을 통해 돈을 흘려 보내지만 세가 약한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들은 사 조직을 통해 자금을 뿌린다. 때문에 이른바 적발되는 사례는 후자가 더 많고 누전 율도 많다. 자금을 조달하는 유형은 갖가지다. 민정(약5천만∼l억 원), 민한(2천만∼3천 만원), 국민당(5백만∼1천 만원)은 중앙당에서「오리발」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자라는 액수는 후보각자가 조달한다. 과거의 예로 보아 실력자 군에 속하는 사람들에겐 여기저기서 거액의 현금(?)이 갈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부인·친구·친척들이 급전·어음 할 것 없이 당겨쓴다.
한 정당관계자는 8백여 명이 출마한 이번 선거에서 적어도 8백 억이 씌어질 것으로 추산한다. 혹자는 이를 당의 재분배라는 측면에서 설명하려 하지만 절반이상이 먹고 마시는데 소비되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래도「낭비」적 측면이 돋보인다. 돈을 쓰면 표가 모인다는 입후보자의 확신과 혜택을 받은 후에 찍는 유권자들의 의식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선거와 돈」의 악순환은 단절되기 어려울 것 같다. <전 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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