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세상 된 중국 농촌 … 비리 촌장 30%가 조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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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올 6월 말 광둥성 내 농촌 마을에서 각종 이권에 개입한 조직폭력배가 체포된 모습. 지난 10년 간 촌장 부패 관련 법원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비리 촌장의 30%가 조폭 출신이었다. [사진 차이나닷컴]

요즘 중국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간 큰 촌장(村長) 얘기 하나. 저장(浙江)성 타이저우(台州)시에 차이양(釵洋)촌이라는 마을이 있다. 도시화 바람을 타고 마을 부근에 부동산 개발이 한창이다. 한데 촌장이 2009년부터 마을 간부들과 짜고 싱싱(星星)집단이라는 부동산 개발사에 농지를 헐값에 넘기고 각종 이권에 개입해 챙긴 돈이 무려 6억 위안(약 992억원)에 달했다. 마을 주민들이 항의하자 조폭을 동원해 폭력까지 행사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호랑이(고위직 부패) 잡느라 정신을 파는 사이 파리(하위직 부패)들이 창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촌장들이 조직폭력배와 결탁하거나 아예 조폭이 촌장에 당선돼 각종 이권을 주무르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가 지난 10여 년 동안 공개된 촌장 비리 관련 법원 판결문 146건을 최근 분석했다. 결과는 놀랍다. 촌장의 30%가 조폭 출신이고 67.5%는 촌장 당선 후 조폭과 결탁해 마을 행정을 주물렀다. 비리 혐의로 처벌된 촌장 97.5%가 조폭과 관련 있다는 얘기다.

모두 18개 성에서 조폭 관련 촌장 비리가 발생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중 허난(河南)성이 가장 심각해 조폭 관련 촌장 비리는 89건이었다. 이어 광둥(廣東)성 18건, 후난(湖南)성 9건 순이었다. 그러나 재판을 받은 부패 촌장 외에도 농촌의 조폭 관련 부패는 매년 수천 건을 넘는 것으로 공안당국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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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폭 촌장의 비리는 다양하다. 판결문 분석(모든 비리 혐의 포함) 결과 촌장의 78%가 마을의 각종 이권에 개입해 현지 시장을 독점했다.

이를 위해 83%가 폭력 조직원을 동원해 정적이나 이권 반대 세력에 폭력을 행사했다. 비리를 고발하거나 저항한 주민들을 구금한 촌장도 26%였다. 이권을 위해 사기나 협박을 한 촌장은 80%로 파악됐다.

2011년 산둥성 린이시에서 열린 전국촌장포럼 행사장에 촌장들이 몰고 온 롤스로이스(맨 위) 등 고급 외제 승용차들. ‘*888’ ‘7777’ 등 수천만~수억원에 거래되는 번호판을 달고 있다. [사진 소후닷컴]

 중국은 1988년 촌장 직선제를 도입했고 2007년 이를 제도화해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비리 촌장 행태는 조폭 그대로다. 2005년 10월 광저우(廣州)시 타이스(太石)촌에서 부패한 조폭 촌장 축출운동을 주도하던 한 시민이 폭도들에게 폭행당한 뒤 실종됐다. 폭행 당시 현장에는 10명가량의 경찰과 군인이 있었지만 이를 묵인했다. 이권을 위해 촌장과 조폭에 경찰까지 합세했다는 얘기다.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 교외의 한 촌장이었던 수젠쥔(舒建軍)은 2006년 촌장 선거 과정에서 선거 하루 전날 당선 가능성이 가장 큰 상대 후보를 조폭을 동원해 살해했다. 수는 지난달 우한시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중국 농촌에서 조폭이 활개를 친 건 농촌의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이권과 농촌세 징수가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최근 10년 동안 도시화를 추진하면서 농촌의 절반 이상에서 부동산 개발 붐이 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폭이 개발 이권에 개입하기 위해 촌장 선거에 개입하는 경우가 급증했다. 특히 개발을 위한 토지 수용과정에서 발생한 농민과 개발사 간 보상을 둘러싼 마찰 해결사로 조폭이 동원되면서 촌장과 조폭의 협력관계가 구축됐다. 중국 정부는 현재 53% 수준의 도시화율을 2020년 61%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2006년 폐지됐던 농촌세도 조폭 창궐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 정부는 농촌 개발과 교육 재원 마련을 위해 농민들에게 농업세와 도살세 등 5건의 세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운 농민들이 세금을 체납하는 경우가 빈발하자 90년대 중반 이후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촌장이 인기를 끌었다. 촌장은 더 많은 세금을 걷기 위해 조폭을 동원해 농민들을 위협했다.

촌장과 조폭 유착이 급증하자 중국 정부는 2001년 농촌세 개혁에 착수해 2006년 매년 220억 위안(약 2조6400억원)에 달하는 농촌세를 폐지했다.

 중국 공안 당국도 지난달부터 농촌 조폭 척결을 위한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간다고 신화통신 등 중국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허쉐펑(賀雪峰) 화중(華中) 과기대 농촌관리연구중심 주임은 “세금 징수를 위해 필요로 했던 강력한 농촌 지도력이 오히려 조폭의 농촌 개입 구실을 제공했고 도시화 바람은 조폭의 농촌 점령을 도운 게 사실”이라며 “68만 개에 달하는 촌 마을을 조폭으로부터 해방시키지 못하면 부패 척결은 호랑이가 아닌 파리 때문에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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