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노동당의 「자살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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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영국노동당이 끝내 자살했다』-. 좀 과장된 표현이긴하지만 1925년 첫 집권이래 영국양당정치와 서구 사회민주운동의 큰 지주였던 노동당 좌·우파의분열을 두고 영국의 「데일리 텔리그래프」지는 이렇게 보도했다.
오랫동안의 정책논장끝에 노동당안의 중도우파세력이 탈당, 2일 새로운 사회민주당의 창당을 선언하고 나섬으로써 영국정치사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게됐다(독「슈피겔」지). 양당정치의 모범으로 꼽혀오던 영국의 정치제도가 제3당의 출현에 따라 그 형태를 바꿀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이번 분당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 50년동안 노동당의 중심세력을 이루어오던 중도세력이 급진적이고도 구조적인 좌파세럭에 밀려난데서 비롯됐다. 양파의 대립은 79년 총신거에서 보수당에 패배, 정권을 넘겨준뒤 노골화돼 왔었다.
중도우파는 좌파가 기간산업국유화의 확대등 너무 과격한 점책을 내세움으로써 국민들의 위기감을 불러일으킨것이 패인이라고 주장한 반면, 좌파는 노동당이 집권기간중 사회민주주의 공약을 저버렸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이념논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당수직을 가지고 있던 「해럴드·윌슨」전수상은 좌파의 압력으로 선거패배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에서 물러서게 됐다.
좌·우파의 대립이 날카로와지면서 좌파가 당내의 지도세력으로 부상할때만해도 노동당의 분당기미는 없었다. 영국노동당 81년사에서 정책이념을 둘러싼 논쟁은 늘 있었고 그때마다 위기를 잘 극복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10월 「블랙·풀」의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노조세력을 등에 업은「마이클·푸트」가 당수에 선출되고 새로운 좌경색의 당강령이 채택되면서 분당설이 공공연히 논의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좌파세력은▲산업국유화의 확대▲EC (구주공동체) 탈퇴▲미핵무기배치반대등을 당강령으로 채택했다.
이때부터「로이·젱킨즈」(전재상)·「셜리·월리엄즈」(전교육상)·「데이비드·오웬」 (전 외무담당 국무상)·「윌리엄·로저즈」(전운륜상)등 거물우파지도자들은 당의 이념이 기본적인 면에서 변질돼 더 이상『노동당은 존재하지 앉게됐다』며 급진론자들의 대두를 우려했다. 타협을위한 시도가 여러차례 실패하자 노동당내의「4인방」이라는 별명까지 들어가며 이들은 탈당명분을 찾기 시작했다.
그 명분이 지난1월 「웸블리」의 특별당대회에서 채택된 수상지명규약. 지금까지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수상지명은 노동당소속 의원들의 투표로 결정돼왔으나 「웸블리」대회에서는 그 결정권을 노조 30%, 지방당대표 30%, 국회의원 30%로 바꿔버렸다.
우파지도자들은 영국노조가 전체 노동자들의 의지보다는 과격한 노조지도자들의 의사에 좌지우지되고 지방당도 노조가 장악하고 있는 점을 지적, 『영국수상을 한줌의 노조지도자들이 결정하도록 내버려둘수없다』며12영의동조의원(하원을모아 사민당창당선언을하기에 이르렀다. 정강면에서 서독의 사민당과 비슷한 중도노선을 표방하고있는 사민당 창당「그룹」은 84년의 총선거에서 보수·노동 양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연립정권에 참여할것을 목표로 하고있다.
최근의여론조사에서는 기존 중도정당인 자유당(11석)과 사민당창당「그룹」이 40%정도의 지지를 받는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양당정치에 젖어온 「전통성」이 강한 영국인들이 막상 투표단계에서 제3당을 선택할 가능성에 의문을 품는 의견도 있지만 「노동당의 분당」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영국정치제도가 「변혁의 조류」속에 진통을 겪을것은 틀림없다. <김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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