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왕 스트레스' 넘겨버린 박병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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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난 20일 오후 2시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박병호(28·넥센)를 만나기로 했다. 그는 인터뷰 예정시간보다 두 시간 먼저 출근해 훈련했다. 힘을 쭉 빼고 잠깐 쉬는 시간에 인터뷰를 했다. 박병호는 “야구장에 일찍 나와 온몸에 핫팩을 하고 근력운동을 했다. 힘들지만 안 할 수는 없다. 어릴 때부터 해온 일”이라고 말했다. 핫팩을 하는 건 찜질과 피로회복 효과를 노리는 거란다.

 19일 목동 LG전에서 그는 1회 류제국으로부터 우월 투런포를 터뜨렸다. 우중간 펜스를 향한 타구에 ‘악성 슬라이스’가 나더니 오른쪽 폴대 근처까지 휘었다. 밀어친 게 아니라 ‘밀려 친’ 것 같은 타구는 비거리 115m 짜리 홈런이었다. 박병호의 괴력이 만든 기묘한 아치. 이로써 박병호는 시즌 40홈런을 때린 역대 6번째 한국인 타자가 됐다. 40홈런은 2010년 롯데 이대호(44개) 이후 4년 만에 나왔다.

 - 올해 40홈런을 칠 거라 기대했나.

 “어차피 시즌 기록은 0에서 출발하는 거다. 마음을 비우되 좋았던 느낌을 유지하려고만 했다. 어제 40호 홈런을 쳤지만 오늘 다시 똑같은 마음으로 나왔다.”

 - 한창 잘 나가다가 슬럼프에 빠졌다.

 “2012·2103년 홈런왕을 차지할 땐 큰 위기가 없었다. 시즌 초에는 원래 못 했던 거고…. 올해는 5월에만 14홈런을 쳤다. 초반 페이스가 워낙 좋았다. 이승엽 선배님의 기록을 넘을 수 있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고, 솔직히 나 스스로 기대했다. 거기서 꼬인 거 같다.”

 박병호는 6월 10일까지 54경기에서 20홈런을 터뜨렸다. 단순 계산으로는 60홈런도 가능해 보였다. 주위 기대가 커질수록 박병호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후 28경기를 치러 전반기를 마칠 때까지 홈런 3개만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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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이 가장 큰 문제였나.

 “슬럼프를 빨리 이겨내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안 되니 훈련을 더 했다. 스윙에서 어느 부분이 나빠졌는지 열심히 찾기도 했다. 힘만 빠지더라.”

 - 어떻게 이겨냈나.

 “올스타전(7월 18일)에서 홈런 두 개를 쳤다. 느리게 던진 공을 친 것이지만 기분전환이 됐다. 이후 우리 팀 경기가 없어 6일을 잘 쉬었다. 그러면서 좋아졌다.”

 - 이승엽도 기록적인 홈런 레이스를 펼치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더라.

 “나도 지난 2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겪어 보니 이승엽 선배님이 느꼈던 압박감을 조금 알 것 같다.”

 - 또 다른 스트레스가 있을 텐데.

 “목동구장 얘기다. 구장이 좁아 홈런을 많이 친다는 얘기를 듣는 게 큰 스트레스다. 40호 홈런을 두고도 ‘목동구장 좁아 빗맞은 타구가 넘어갔다’는 말도 있더라. 넘어갈 타구는 어디서나 넘어간다. 목동에서 홈런을 많이 치는 건 내가 경기를 준비하고 타격을 하는데 가장 편한 곳이기 때문이다.”

 박병호의 올해 홈런 40개 중 28개가 목동에서 나왔다. 목동구장 홈플레이트부터 펜스까지의 거리가 좌·우 98m, 가운데 100m다. 잠실구장(좌·우 100m, 가운데 125m)을 제외한 다른 구장과 별 차이가 없다. 올 시즌 박병호 홈런의 평균 비거리는 124m로 2003년 이승엽(118m)은 물론 잠실구장을 홈으로 쓴 1998년 타이론 우즈(119m)보다 훨씬 길다. 역대 홈런왕 가운데 최장 비거리다.

 - 10년 뒤 박병호는 어떤 모습일까.

 “메이저리그를 재미있게 보고 있지만 나와는 먼 얘기다. 10년 후면 딱 지금 이승엽 선배님 나이(38세)다. 선배님은 아직도 홈런타자다. 나이 들면 스피드와 순발력이 떨어질 것이다. 그래도 나는 교타자로 바뀌는 게 아니라 홈런타자로 남고 싶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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