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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소용돌이속 시적 분위기 살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중진작가 이병주씨가 본지에 추리소설『미완의 극』을 연재(3윌 2일부터·일부지방 3일부터)함으로써 한국문단에도 새로운 추리소설「붐」이 기대되고 있다. 『미완의 극』연재를 앞두고 작자인 이씨와 추리문학전문가인 황종영교수가 자리를 함께 하여 추리소설에 대한 여러가지 이I야기와 특히 연재되는 『미완의 극』구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집자주】
황-이선생께서 본격추리소설 『미완의 극』을 중앙일보에 연재하기로 했다니 추리소설을 아주 좋아 하는 한사람으로 기대가 큽니다. 우리 작가들은 그동안 추리소설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더러 추리소설을 쓰면 자기 작품세계에 흠이라도 생기는 것 갈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않았습니까.
이-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않습니다. 추리소설이든 딴 소설이든 결국 그 작품의 내용이 문제입니다. 작품이 말을 하는거지요.
황-그렇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예로들면 『죄와 벌』『악령』등은 추리적 기법의 소설로 볼 수 있는데 이 작품들이 질이 낮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추리소설은 우선 재미가 있습니다. 요즘 우리소설은 좀 재미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인간성의 문제나 사회문제등을 추리소설의 방법으로 파헤치면 오히려 생생해지지 않을까요.
황-이선생의 작품속에 추리적 기법이 담긴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저자신 추리소설을 즐겨 읽고 있습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꼭「크리스티」나 딴 작가들의 작품을 읽지요.
그리고 추리소설을 써 보겠다는 생각은 줄곧 하고 있었습니다. 소재도 좀 가지고 있지요. 이조시대의 궁중암투를 복수극으로 꾸며 보는 것, 위조지폐사건, 우편물분실사건등인데 충분히 이야기가 되곗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추리소설이 우리나라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작가들에게도 문제가 있겠습니다만 독자층은 어떨까요.
황-우리 국민성에도 추리소설 기호가 크다고 생각해요. 고전문학을 하는 장덕순교수 같은 분은 『정수경』『김원부』같은 작품은 추리소설이라고 못박고 있어요. 외국의 경우를 보면 영·미쪽은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독·불쪽은 덜하다고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또 일본인은 괴기나 추리를 좋아하는 기질이 있다고들 하지요.
이-우리나라 사람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아요.(웃음)
황-작품이 문제겠지요. 좋은 작품이 나오면 추리소설「붐」이 일어납니다. 영국도 「크리스티」같은 작가가 있어 추리소설이 번성했고, 일본도 「마쓰모또」같은 작가가 있지요.
이-영국사람들은 무거운 것을 싫어하는 성향이 있고 일본사람들은 무시무시한 것을 즐기지요.
황-요즘 추리소설은 본격추리물과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소위 「사회파」의 두갈래로 갈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선생은 어느 쪽으로 써 나가실 예정인지요.
이-「사회파」쪽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정치와 경제의 유착등이 다루어지고 있는 모양인데 우리 실정으로 아직 어렵고…. 흥미본위가 아닌, 인생을 생각하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추리소설이 범인이 누구냐 하는 식의 틀에만 박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건이 진행될 때는 폭포처럼 쏟아지다가도 사건이 없을 때는 공원을 산책하는 것 같은 시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가면서 이어나가려고 해요. 그리고 추리자도 전문적인 사람을 등장시키지 않겠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우연히 사건에 말려들어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거지요.
황-추리소설이 자리잡으려면 평론가들이 추리소설을 양성하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소설평 같은데 추리소설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으니 커나가기 힘들지요. 일본의 경우 추리소설에 대한 평론가들의 관심이 커서 「요시다·겐이찌」(길전건일) 같은 사람은 「미나까미·쓰도무‥(수상면)의 『기러기 절간』을 위해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격찬하기도 했습니다.
이-평론가들이 순수문학에만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고 이론을 세우고 추리소설에 대한 폭 넓은 평론을 해주면 독자도 늘어날 것 같아요.
황-우리나라 추리소설 독자도 어느정도 수준에 올라있습니다. 외국작가 작품, 예를 들어 「크리스티」의 것은 많이 팔립니다. 그리고 추리영화는 흥행이 잘 안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만 최근 『나일강 살인사건』같은 것은 꽤 성공했다고 해요.
이-그만큼 저변학대는 되어있다는 증거겠지요. 「미스터리·클럽‥(추리소설애호협회)은 저변확대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황-현재로서는 번역쪽이지요. 그리고 이선생에 비하면 우리는 「아마추어」지만 회원들의 단편집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선생을 협회 고문으로 모시고 싶은데요.
이-별말씀입니다.(웃음) 좋은 이론을 많이 들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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