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서독 여자배구 대표팀 박대희 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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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박대희씨(45)는 외국에서 명성의 나래를 활짝 편 대표적인 체육인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대신고 배구「팀」의 1백48연승의 화려한 전승기록을 만든「코치」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몇 배구인 뿐.
그러나 지금의 박대희씨는 서독여자배구 대표「팀」을 이끌고 있고 서독배구협회에 미치는 입김도 대단하다.
이런 명성과 실력 때문에 한국남녀배구가 서방「유럽」은 물론공산「유럽」국과 교류를 할 때도 꼭 박대희씨를 창구로 하고 있다.
오늘날이 되기까지에는 역시 고생의 길을 거쳐왔다.
대부분의 체육인들이 그렇듯이 참으로 우연히 서독에 갈 수 있었다.
11년전 서독여자배구「팀」이 전지훈련 차 내한했을 때 대신고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게 됐다.
서독여자대표「팀」을 보니 실력이 우리 나라 여자중학 정도.
답답하게 느낀 박대희씨가 친절을 베풀었다. 이 조그마한 지도를 감명 깊게 느낀 서독「팀」은 박씨에게 아예 서독으로 오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해 온 것이 서독에 정착한 인연이다.
당시만 해도 서독은 배구인들의 처녀지. 외국어 장벽에다 생활풍습의 차이로 끔찍이나 설움도 겪었다.
다행히 한인회라는 것이 있어 외롭고 답답함을 달랠 수 있고 언어장벽에 큰 도움을 받았다.
연방대표「팀」이라는 것도 주말에만 겨우 모여서 심심풀이로 하는 정도. 수준을 올리려해도 훈련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재미있는 배구부터 가르쳤다. 이른바 일본과 한국에서 성행하는 속공이다.
속공을 해본 덩치 큰 서독여자선수들이 신바람이 나기 시작했다.
일단 성공이었다. 계속 밀고 나갔다.
박씨의 지도로 서독「팀」은 점차 「루마니아」 「폴란드」등 동구공산권 국가들과도 「게임」 같은 「게임」이 되어갔다. 영국 「프랑스」등 서 「유럽」국가 대회에서는 꼭 우승이었다.
세월이 흘러 자리도 어느 정도 잡혔을 때인 76년 「뮌헨·올림픽」이 열렸다. 서독은 주최국으로 여자배구의 출전권이 있었지만 실력이 엉망이어서 고민하던 차에 이처럼 성장한 여자대표 「팀」을 「코리아·박」이 만들었다는데 경악과 감사를 보냈다.
「뮌헨·올림픽」이 자리잡은 계기가 될 줄이야.
서독배구협회는 모든 사업계획과 대표「팀」운영은 모두 박씨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각「클럽」지도자들을 지도하는 것은 물론「주니어」선수 선발까지 맡기고 있다.
박씨는 서독여자대표「팀」을 이끌고 지난 76년8월 내한했었고 지난해 1월 「모스크바·올림픽」에 대비, 한국남자대표「팀」이 전지훈련 차 서독을 방문했을 때「불가리아」까지 따라가 봉사했다.
또 지난해 12월 한국 서독「폴란드」「쿠바」「루마니아」등 5개국 친선대회를 창설, 한국배구가 국제무대에서 활발히 움직일 수 있도록 온 정열을 쏟기도.
서독여자배구대표「팀」지도에 10년 넘게 봉사해온 공로가 인정되어 한국「스포츠」인으로서는 유도의 한호산씨(일명「타이거」한)에 이어 오는 5월 두 번째로 시민권을 갖게된다.
「만하임」에서 세 딸과 함께 월3천「마르크」(약1백10만원)을 받으며 30여평 되는 연립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임금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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