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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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설날에 이어서 음력정월보름은 우리에겐 큰 명절이었다. 「대보름」혹은 「상원」이라 했다. 특히 이날밤을 「원소」 또는 「원석」이라 불렀다. 신라때부터 등을 달고 노는 풍속이 있어 「등석」이라고도 했다.
대보름 「달맞이」는 대단했다. 농촌에선 초저넉 일찌감치 홰를 장만해 산에 올라 달이 떠오르면 여기저기 불을 밝혔다.
남보다 먼저 달을 보러 산에오른 사람들은 합장하고 소원을 빌었다. 풍년도 빌고 시집·장가가기도 빌었다.
이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밤·호두·잣·은행등을 깨물어 버린다. 「부럼」이다. 부스럼을 앓지않게 해달라는 뜻이니 「교창과 (교창과)」라고도 한다. 아침에 술을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해서 모두 술을 한잔씩 마신다. 이명주 곧 「귀밝이술」이다. 좋은 소식을 듣기위한 것이다.
깨끗한 종이에 흰밥을 싸서 물에 던지는 것을 「어부슴 (어부슴)」이라했다. 물고기나 오리에 베푼다는 뜻이요 액막이의 뜻도있다.
이날 먹는 음식에도 특색이 있다. 찹쌀·대추·밤·꿀·잣을 섞어 찐 「약밥」이 있다. 제사도 올리고 손님대접도 하며 이웃에 보내기도 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꿀밥이다. 신라 소지왕때 내전의 승과 궁주가 잠통하는것을 까마귀가 알려준 때문에 까마귀에 찰밥으로 제사하게 되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삼국유사」사금갑 (사금갑) 조의 기록이다.
쌀·보리·콩·팥·조등 다섯가지 이상 곡식을 섞어 밥을 지어 먹는 「오곡밥」이 있다. 타성의 세집밥을 먹어야 그해 운이 트인다고 여러집 오곡밥을 서로나눠 먹고 그것도 아홉번에 나눠먹기도 했다. 이는 갖가지 곡식농사를 두루 잘 짓게하려는 뜻이요, 이웃간의 교환을 깊게 하려는 생활지혜겠다.
박나물·버섯·콩나물·무우등을 묵혔다가 나물을 무쳐먹기도 했다. 외꼭지·가지고지·시래기도 모두 말려두었다가 삶아 먹는다. 이것이 진채, 곧 「묵은나물」이다. 이것을 멱으면 더위를 먹지않는다고 한다. 밥을 김이나 취·배추잎에 싸서 먹는 「복쌈」도 있다.「답교」와「지신밟기」풍속도 있다. 대보름밤에 사람들은 밤이 새도록 큰다리위를 내왕했다. 북을치고 혹 퉁소도 불며 소란을 부렸다. 이래야 1년동안 다리에 병이 나지않고 액도 막는다고 했다. 서울에선 광교나 수양교가 가장 붐볐다.
답교에도 놀이의 성격이 강했지만 지신밟기는 더 흥겹다. 농악대를 앞세워 집집마다 돌면서 지신을 위로하는 행사였다. 하나같이 아름답고 그리운 풍속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속인가도 싶다.
그러나 어제 오늘 시장이나 거리에 늘어선 부럼장수나 나물장수를 보면 반드시 그런것 같지만도 않다. 어려운 살림에 밤이나 호콩을 조금씩 사들고 들어가는 주부들도 있다.
이 대보름엔 한껏 크고 밝은 달이나 떠서 어진 백성들에게 골고루 복이나 뿌려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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