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기자 참수와 시험대에 선 오바마

중앙일보

입력

8일 이후 이슬람 수니파 무장정파 '이슬람국가(IS)'에 대한 미군의 공습이 계속되는 가운데 IS가 미국인 기자를 참수했다. 또 다른 기자의 살해도 예고했다. 이라크에 좀처럼 발을 들여놓고 싶어 하고 않았고 들여놓더라도 극히 제한적 개입만 하고 싶어 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선 선택지가 줄어드는 “암울한 상황"(로이터)이 돼가고 있다.

IS는 19일 유튜브에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란 제목의 4분40초짜리 동영상을 게시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IS에 대한 미군의 공습을 승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 영상은 곧 미국인 기자인 제임스 라이트 폴리(40)가 사막 한 가운데 꿇어앉은 모습으로 바뀐다. 폴리는 지난 5년 간 리비아·시리아 등 분쟁지역을 취재했던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2012년 11월 시리아의 북부 이드리브에서 실종됐었다. 그의 옆엔 눈만 드러낸 채 온몸을 검은 천으로 가린 IS대원이 버티고 서 있었다.

폴리는 “나의 진정한 살해자인 미국 정부에 저항하라. 나에게 곧 벌어질 일들은 그들의 범죄에 따른 결과”라고 말했다. IS대원은 직후 영국 억양으로 “오바마의 공습 승인에 대한 보복”이라고 말하곤 흉기로 폴리를 살해했다.

동영상 종반부엔 다른 남자의 얼굴도 공개됐는데 미국인 기자 스티븐 소트로프라고 했다. 타임과 포린폴리시에 기고하는 프리랜서 기자로 지난해 8월 시리아에서 실종됐었다. IS 대원은 “이 남자의 목숨은 오바마 당신의 다음 결정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폴리의 어머니인 다이안 폴리는 이 같은 소식을 접한 후 “아들은 그의 생을 시리아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세상에 알리는데 바쳤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부 관계자도 “희생자를 폴리로 보고 있다”고 확인했다.

IS는 지난 주 시리아 정권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10여 명을 참수하는 동영상을 공개하는 등 잔혹한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2011년 시리아 분쟁이 시작된 이후 미국인을 이처럼 살해한 건 처음이다. IS의 주장대로 8일부터 시작된 미군의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

임기 내내 이라크에서 발을 빼고 싶어 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이달 초 IS에 의한 인종 학살이 선을 넘었다는 판단에 인도주의적 차원의 공습을 승인했었다. 그 후 미군이 80여 곳에 달하는 IS 거점을 공격했고 한때 이라크의 3분의 1 정도를 점령했던 IS가 퇴각하기 시작했다. 18일엔 이라크군과 쿠르드족이 전략적 요충지인 모술 댐을 탈환하는 성과도 거뒀다. IS가 극단적인 미국인 참수 카드를 꺼내든 배경이다.

과거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IS의 전신이랄 수 있는 알카에다가 그랬다. 2002년 파키스탄에서 알카에다 지도자인 칼리드 예이크 무함마드에 의해 월스트리트저널의 미국인 기자 대니얼 펄이 살해됐었다. 2004년에도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이끄는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가 미국인 기자인 니콜라스 버그와 잭 헨슬리, 유진 암스트롱, 영국인인 케네스 비글리, 그리고 한국인 그리고 한국인 김선일씨도 같은 방법으로 숨지게 했다. 당시 조지 W 부시 정부는 여론의 지원 속에서 대대적 반격에 나섰었다. 알-자르카위 자신도 2006년 미군의 공습으로 숨졌다.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가 지하화한 계기였다.

이번 폴리의 죽음도 비슷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래리 사바토 버지니아대 교수는 “과거의 경우처럼 미국인들 사이에 미국이 보다 공격적으로 IS를 다뤄야 한다는 인식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라크 정부에 참여한 수니파 지도자들도 “미군의 공습이 확대되길 바란다”고 요구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때문에 “결국 미군이 이라크의 공군이 되는, 오바마가 공개적으로 원치 않는다고 말한 그런 모습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백악관에선 “사실이라면 끔찍한 일”이란 논평만 내놓은 상태다. 내부적으론 사실로 판단한 만큼 오바마 대통령의 공개적인 입장 표명이 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오마바로선 원치 않는 '시험대'에 선 셈이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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