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스트론」씨(한국명 이선희)|"옆집 장맛도 모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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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국 속담을 통해서 한국에 대한 재미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어느 나라건 그 나라의 풍습과 국민에 대하여 배우고 싶으면 속담을 많이 아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인이 한국 사람들과 대할 때 단어실력은 없어도 때와 장소에 맞는 속담을 한 두개 말하면『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한다』는 평가가 나오기 십상이다.
14년 전 한국에 처음 도착한 나는 한국 사회를 밖에서 들여다보는 외국인이라는 느낌을 가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다.
나의 두 딸은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살면서 그들의 모국어가 영어인지 한국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한국말을 잘 한다. 우리 내외도 또한 말과 생활 풍습을 조금씩 배워봤으니 지금은 서울이 우리 고향과 비슷해졌다.
왜 가능했을까? 한국 속담에「옆집 장맛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 뜻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웃끼리도 서로를 모르면서 관심 없이 왔다갔다하는 생활을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더우기 요즘처럼 대도시 생활을 하고 어렵고 복잡한 문제 속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자칫 중요한 인간관계률 무시하고 살아가기 쉽다. 그래도 괜찮을까?
이웃 가정들끼리 서로 사귀며 다정하게 오갔던 까닭에 우리는 옆집 친구들로부터 한국말과 사고방식을 깨닫게된 크나큰 선물을 받았다.
그 뿐만 아니라 옆집 장맛을 시식해본 다음 그 맛을 더욱 잘 알고 안방 아랫목에 같이 앉아서 된장찌개까지 먹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얼굴과 역사가 다른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웃거나 울면서 서로서로 마음을 열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14년 동안에 나의 미국 귀에 자주 들려 온 한국말은「죽겠다」는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죽지 않고 살려면 옆집과 사이좋게 지내고 누구나 사람하고 이해하는 정신적인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동네나 교회나 학교생활의 경험을 통해 보면 옆집 장맛을 알아보는 노력만 하면 우선 자기가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또 무엇보다도 오늘의 우리 세계에 필요한 것이 서로 양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자기 이익만을 위해 애쓰고 사는 개인이라든가 가족이라든가 나아가 국가까지 말을 꺼내면 예를 들기는 어렵지 않다고 상대방을 잘 모를 때는 양보할 마음을 갖기 힘든 일이지만 남의 겉면은 물론이고 그의 소원과 꿈까지 알고 이해한다면 양보할 수 있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두 집 식구들이 서로 이해하고 존경할 때 서로의 어려운 문제를 돕고 서로를 위해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나아가 나라간에도「옆집 장맛」만 알게되면 세계의 평화가 조금이라도 빨리 오지 않을까….

<필자약력>
▲39년 미국「뉴욕」주 출생 ▲60년 미국「로치스터」대학졸업(사회학 전공) ▲60∼63년「말레이지아」에서 감리교 선교사로 3년간 근무 ▲작년 내한 이대강사(영문학)감리교 총무원근무 ▲72∼77년「콜럼비아」대학 대학원졸(불어교수법) ▲한국 가정법률상담소 자원봉사자로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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