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세상읽기

중국의 구애는 왜 이리 뜨겁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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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일러스트=강일구]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아이스크림을 튀긴 것’과 같다.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이 전하는 지난달 한·중 정상회담에 대한 한 중국 관료의 평가다. 무슨 말인가. 튀긴 아이스크림처럼 겉은 뜨거웠지만 속은 차가웠다는 것이다. 양국 정부가 표면적으론 ‘역사적 성공’ 운운했지만 내부적으론 서로들 많이 아쉬워했다는 이야기다.

 뭐가 그리 아쉬웠을까. 우리 입장에서 보면 북핵 문제와 관련해 기대만큼의 진전이 없었다. 공동성명은 여전히 북한 핵 개발 반대가 아닌 한국까지 포함하는 의미의 한반도 핵 개발 반대를 천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구상인 드레스덴 선언은 드레스덴이란 말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고 그 내용을 풀어서 공동성명에 넣는 데 만족해야 했다.

 중국이 아쉬워한 건 뭔가. 한국을 좀 더 중국 곁으로 가까이 끌어당겼어야 하는데 한국이 워낙 조심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을 향한 중국의 구애(求愛)는 무척이나 공세적이었다. ‘한집안 사람(一家人)’처럼 끈끈한 관계임을 강조하려 애썼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친척 집에 가는 것(走親戚)’으로 표현했다. 시진핑은 특히 부인 펑리위안(彭麗媛)과 함께 한국을 찾아 가족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네 차례나 한국을 방문하면서도 단 한 번도 미셸 여사를 대동하지 않았던 점과는 크게 구별된다.

 중국의 뜨거운 러브콜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현재 이에 대한 답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미국의 대(對)중국 봉쇄망을 깨기 위한 중국의 포석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한 이후 중국의 부상에 강한 경계심을 갖고 중국 견제에 돌입한 상태다. 중국과 인접국 간에 분쟁이 발생하면 미국은 기계적으로 인접국을 지원한다. 일본과의 동맹 강화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역사에 대한 반성도 없고 우경화로 치달아도 중국을 견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일본을 감싸고 돈다. 여기에 한국을 더해 한·미·일 안보협력을 구축하려 한다. 우리야 이 협력이 북한을 겨냥하기를 바라지만 미국은 중국을 더 염두에 둔다. 중국은 바로 이 같은 미국 주도의 봉쇄 대열에서 한국을 떼어내기 위해 한국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중국의 완충지대(buffer zone) 확대론이다. 과거 중국은 북한을 미국의 영향력을 막아내기 위한 완충지대로 봤다. 그러나 한국과 관계가 점차 강화되면서 이젠 북한과 한국 모두를 포함한 한반도 전체를 완충지대로 활용하려 하며 이에 따라 한국에 매력 공세를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해석들이지만 중국의 깊이를 덜 헤아렸다는 느낌이 든다. 둘 다 미국의 공세에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중국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다. 우리는 중국의 한국 끌어당기기가 보다 공세적인 전략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을 중국 편으로 만들려는 건 중국의 오랜 꿈인 중국의 ‘굴기(<5D1B>起)’와 연결돼 있다.

 이와 관련, 현실주의 정치학자로 시진핑 외교의 뼈대를 제공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 옌쉐퉁(閻學通) 칭화(淸華)대 교수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을 유일 초강대국으로 하는 현재의 일초다극(一超多極) 국제 구도는 2023년께가 되면 미·중 두 나라에 의한 양극(兩極) 구도로 바뀐다. 이 구도의 승자는 누가 될까. 두 가지 요소를 봐야 한다. 하나는 미·중 각자의 국력이고 다른 하나는 양국이 각각 얼마만큼의 우방을 확보하고 있느냐다. 이 둘의 합(合)에 의해 승부가 가려질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2023년 세계사 불변의 법칙』)

 옌쉐퉁은 이에 따라 중국이 이젠 비동맹(非同盟) 정책을 포기하고 적극적으로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이 세계 각지에 42개의 군사 동맹을 갖고 있는 데 반해 중국은 단 하나의 동맹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옌쉐퉁은 심지어 한·중이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 정부가 앞으로 동맹 정책까지 채택할지는 모르나 지금 분명한 건 중국이 적극적으로 우군(友軍) 확보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관계를 다지고, 멀리 아프리카 친구들을 부르며, 남미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한다. 특히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를 외친다. 시진핑이 지난해 가을 주변국 외교공작 회의를 열고 ‘친하게 지내고 성의를 다하며 혜택을 주고 포용하겠다(親·誠·惠·容)’는 주변국 정책 기조를 정한 것 또한 강력한 우방 확보 정책의 일환이다. 다가올 미국과의 진정한 승부를 겨냥해서다. 한국을 향한 중국의 구애는 중국의 굴기를 실현하려는 중국의 세계 전략과 닿아 있다. 따라서 앞으로 집요하게 전개될 것이다.

 이제 남는 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다. 논의가 필요하다. 그 논의는 넓고 깊게 또 많이 이뤄져야 한다. 답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유념할 게 있다. 중국의 구애에 아무 생각 없이 훅 넘어가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이를 구렁이가 토끼를 휘어 감는다고 생각해 몸을 바짝 움츠리기만 하는 것 또한 능사는 아니란 점이다. 상대의 의도를 정확히 읽고 우리가 오히려 더 공세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심초사해야 할 때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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