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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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저희들끼리 만나 오순도순 사귀다 결혼에「골인」하는 것이 오늘날의 가장 바람직한 효도라는 친구의 말이 어떤 철학자의 명언보다도 실감나는 요즈음이다.
그럭저럭 나이가 차 결혼할 때가 되었는데도 마땅히 점찍어둔 후보자 하나 없으니 부모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기저기 맞선자리를 마련해 놓고 선보러 나가라고 매일같이 성화들이시다.
대개는 호젓한 다방에서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취미는?』 『좋아하는 음식은?』 식의 시시한 상호심문이 이어지다가 그나마 끊기면 어색한 침묵을 지키고 돌아오게 되는 맞선.
물론 처음 만났는데도 어쩐지 호감이 가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고 싶어지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맞선 본 후의 기분은 꼭 떫은감을 씹은 것처럼 뒤끝이 씁쓸하기만 하다.
나는 왜 남들처럼 진작에 가슴을 열어 사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문득문득 자신이 한없이 한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최근의 결혼풍속을 보면 조건 좋은 사람들끼리 연결시켜 성사되면 사례금을 톡톡이 받는다는 이른바「마담뚜」 도 많고 결혼상담소도 적지 않은 모양이지만 그렇게 해서 만나는 것은 뭐랄까「만남의 신비」같은 게 사라지는 것 같아 싫기만 하다.
가정환경·학벌·직장이라는 간판만 크게 보일 뿐 정작 중요한 본인은 한없이 왜소해 보이는 것 역시 맞선의 자리에서다.
『이사람 저사람 다 싫다면 평생 노처녀로 늙어죽을래?』역정을 내시는 부모님껜 면목없는 얘기지만 신비감이 사라져 맞선의 자리는 따분하고 싫증나기만 하니 당분간은 부모님께 더 걱정을 끼쳐 드려야 할 모양이다.
(충북청주시사회동357의58) 이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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