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한국인"…이견과 조화의 18년-주한 독일학교 교장 하이디·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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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필자약력>
▲37년 독일「비르펠트」시 출생
▲62년「뮌헨」대학졸 (영문학·불문학 전공)
▲63∼67년 서강대에서 독문학 강의
▲77년 이후 주한 독일학교 교장
▲61년 강연국씨(태영판지 대표이사)와 결혼
나의 남편은 한국인. 나는 독일인, 남들은 우리 한독 부부의 생활에 관해 호기심을 갖고 많은 것을 묻는다.
반면에 내 남편이나 나는 오히려 다른 독일인 부부나 한국인 부부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우리 처지와 비교한다.
우리 두 사람이 각기 자라온 서로 다른 문화적·사회적 배경이나 사고 방식의 차이점들은 18년이 넘는 결혼생활 과정에서 그런대로 많이 통합 조정되어 큰 무리없이 합일점을 찾아왔다.
아직도 접근점을 찾지 못한 것은 각기 자기위치를 양보하거나 양보 받거나 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 그러한 접근점을 찾지 못한 예를 소개키로 한다.
일요일 아침만 되면 내 남편은 갑자기 그날의 계획을 발표하는 때가 많다. 그 전날이나 며칠 전에 하면 좋겠는데, 사업 일로 바빠서. 무슨 급한 볼일이 있을지 몰라서 미리 등산계획 같은 것을 세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참으로 당황하게 된다. 나는 매주 34시간이나 되는 학교강의의 준비·번역작업 등 집에서 할 일이 꽤 많은 편이다.
그래서 생기는 우리들의 대화 한 토막.
남편·『오늘 우리 수나(딸 이름) 데리고 등산이나 갈까?』
나·『그걸 지금 갑자기 얘기하면 어떻게 해요. 난 할 일이 많단 말에요.』
남편·『몇 시간이면 되는데?』
나·『약 3시간이면 돼요.』
남편·『그럼 등산갔다 와서 밤늦게까지 하면 되지 않아. 저녁 6시까지는 돌아오게 될테니까 말야』
나·『안 된다니깐 그래요. 할 일이 남아있는데 어떻게 마음놓고 놀러 다녀요?』
남편·『할수 없군. 어서 빨리 빨리 끝내고 오후 두시 쯤 출발할 수 있도록 서둘러봐』
그리고 점심시간 후.
나·『지급 출발할 수 있는데, 수나야, 어서 준비해라. 우리 모두 등산가는 거다』
남편·『지금 가면 어디로 가지? 시간은 다 보내놓고, 김도 샜단말야)』
나·『지금 출발해도 차로 가니깐 충분히 등산하고 저녁도 시내에서 먹고 돌아올 수 있어요』
남편·『그래? 그럼 슬슬 일어나 볼까?』
나·『그보다 좀 피곤한데 낮잠 반시간만 자고 가면 안되나요?』
남편·『정말 너무 하는군. 이거고 저거고 다 그만두지. 다음 일요일도 없으니깐 말야.』
나·『아주 잘됐어요. 집에서 오늘 하루 푹 쥐고 내일부터 다시 1주일 동안 일할「에너지」를 길러야 하니까요』
남편·『이래저래 잘 됐군, 피 이렇게 해서 결국 우리들의 일요일은 흐지부지 지내고 마는데 사실 내게도 결함은 있는 것이다. 할 일이 3시간으로 예정되면 놀러 갔다와서 해도 되는데 할 일을 두고 먼저 놀러 다닐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남들은 나보고 일 버러지라고도 한다.
할 일이 없으면 그것같이 답답한 대가 없다. 이것은 분명히 독일인들이 갖고 있는 병중의 하나일 것이다. 할 일의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해 나가는 즐거움, 이것은 노는 때의 즐거움과는 다른 떳떳한 즐거움이다.
한편 내 남편은 계획도 잘 세우나 그 순서가 나와는 다르고 내 눈으로 볼 때에는 그것이 무계획적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다분히 한국적인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이러한 차이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늘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 그때마다 사실은 내가 이기고 마는 것이다. 자기 할일을 먼저 한 후에야 놀러가건 산책가건 할 수 있다는 쪽에 명분이 더 크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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