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포워드 가이던스 검토하고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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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호 18면

“통화정책회의 의사록을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시험판을 내놓겠다.”

세계 중앙은행, 시장과 소통 활발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달 깜짝 발언을 했다. ECB는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8개 나라)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중앙은행이다. 출범 이래 14년간 의사록을 공개한 적은 없었다. 통화정책회의 직후 총재가 기자회견을 하며 배경 설명을 하는 게 전부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로타워 36층에 ECB 이사진이 모여 어떤 일을 벌이는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곧 그 비밀이 벗겨진다”고 전했다.

지난 4월 8일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도쿄본부에 평소보다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그날 일본은행 132년 역사상 처음으로 총재 통화정책 기자회견이 생중계됐다. 일본은행은 회견이 끝날 때까지 방송과 기사 송고를 미루던 원칙을 없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함께 아베노믹스를 이끄는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의 결정이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일본은행 내부에서 총재가 직접 영어로 기자회견을 하는 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통과 엄숙, 보수와 격식의 상징과도 같은 세계 중앙은행들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목적은 분명하다. 시장과의 원활한 소통이다. 금융시장이 복잡해지고 통화정책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중앙은행의 역할도 커졌다. 총재의 발언 한 마디, 은행의 발표 한 줄이 시장에 끼치는 영향력도 막강하다. 이를 뒤집으면 중앙은행이 시장에 신호를 잘못 보냈을 때 발생하는 악영향도 커졌다는 의미다. 각국 중앙은행이 엄숙주의를 내려놓고 개혁에 나서는 이유다.

한국은행은 의사록 공개 여부나 총재 기자회견 방식에 있어선 일본은행이나 ECB를 앞선다. 회견 생중계를 한 지는 오래다. 의사록은 발언한 금통위원 이름을 익명 처리하지만 2주 후에 공개된다.

하지만 한은의 소통 노력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합격선에 못 미친다. 잦은 방향 전환과 엇갈린 신호가 시장에 혼선을 준 적이 많았다는 비판이다. 이주열 총재만 해도 지난 3월 청문회부터 5월까지 “금리의 방향 자체는 인상이 아니겠느냐”며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올 6월 이 총재는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한 시점이다. “경기 하방 위험이 커졌다”며 금리 인하 깜박이를 켜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 14일 이 총재의 선택은 기준금리 인하였다. 지난 4월 총재에 취임하며 했던 “6개월 후 금리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면 2~3개월 전에 신호를 줘야 한다”는 말을 스스로 어긴 셈이 됐다.

그래서 한은 내부에서 검토하는 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나 ECB 등에서 쓰고 있는 ‘선제적 안내(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다. 고용·물가·성장률 같은 특정 경제지표를 목표로 설정해놓고 ‘이 수준에 다다르면 금리를 조정하겠다’고 미리 약속을 해놓는 방법이다. 이 총재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상당히 논의하고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도입 여부를)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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