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박경덕과 손기정씨 육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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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세배를 드리러 찾아온 후배에게 느닷없이 노 선배는『세배보다 운동이나 하러가자』 면서 등을 밀었다.
눈밭이 된 배재고 운동장을 30여분동안 뜨거운 입김을 뿜으며 달린 노익장 손기정씨(KOC위원·「마라톤」강화 위원장·69)의 눈은 45년전「베를린·올림픽」제패의 추억을 더듬는 듯 감회에 젖었고 해군에 복무중인 햇병아리「마라토너」박경덕(22)은 웅비의 결의를 다시 한번 다지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옛날과 달리 요즈음은「마라톤」얘기를 할라치면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단 말이야』심호흡을 한 대 선배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눈살을 찌푸리며『「마라톤」하는 사람들, 국민들 볼 면목이 없지. 그러나 경기인들만의 책임도 아니야. 「스포츠」의 기본인 육상을 경시해 온 그동안의 사회풍조 탓도 크지』
『진학이나 취직의 문호가 특히 육상 종목에 좁으니 학생들이 육상을 안 해요.』79년에 인천 대헌 공고를 나와 사회생활 2년생인 후배도 거들었다.
박경덕은 중학1년 때부터 장거리 선수로 두각을 보이다가 작년에 5천m와 1만m의 두 종목 모두 각각 13분25초4와 27분48초6으로 한국최고기록을 수립, 새해를 맞아 국내「마라톤」의 오랜 침체를 타개할 최대 유망주로「클로스업」되었다. 근2년간 앓은 간장염을 딛고 재기할 정도로 집념과 근성이 탁월하며 지구력과「스피드」를 겸비한 발군의 건각이다.
『「마라톤」엔 정말 어떤 묘방 이란게 없을까요?』후배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 「마라톤」은 가장 외로운「스포츠」야. 그것은 자기자신과의 싸움이 아닌가.「마라토너」의 생활이란 곧 수도야. 뼈를 깎는 아픔을 이겨내는 의지와 신념이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묘방이지』
그러면서 선배는 지혜를 강조했다. 『공부를 해야 돼. 자신을 완전히 파악해야 되고 그 체질과 특성에 맞는 훈련 방법을 스스로 창안해 내야 해. 그래서「마라톤」「코치」는 엄밀히 말해 조언자지 지도자가 아니야. 훈련은 우직할 정도로 매진해야 하는 반면, 과학적인 연구를 게을리하지 말도록…』
『옛날에 영하 30도의 혹한 속에서 솜 넣은「팬츠」만 입고 훈련했다는 얘길 들었어요』 『평소 정류장에서「버스」를 기다리는 잠시동안에도「마라토너」는 제자리 뛰기를 하는 습관을 가져야 돼』<박군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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