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판화 등에서 새로운 가능성 모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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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술>
이=지난해 미술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볼 때 공정적인 측면에서 두드려질만한 현장은 없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문제제기는 거의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오=79년 후반기부터 사회전체가 침체현상을 나타냈는데 그 영향으로 80년 상반기는 상당히 위축됐지요. 그것이 후반기에 들면서 차차 활기를 되찾는 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한국 미술의 해외 진출은 과거보다 몹시 활발했던 것 같아요.
이=그렇습니다. 국제전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한해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를테면「파리·비엔날레」라든가, 일본에서 열린「아세아 현대 미술전」에서의 호평은 상당했어요.
오=「칸」국제전에서도 한국 미술은 좋은 평가를 받았지요. 이 대회에서 김홍주씨(서양화)가 비평가상을 수상했는데 개인상은 처음 받은 걸로 기억됩니다.
반면 국내에서는 두드러진 인물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중앙 미전과 국전에서 2관왕이된 이숙자씨(동양화), 동아 미술제 대상을 받고 개인전을 열었던 한운성씨(판화), 한국 미술대상을 수상한 이동황씨(서양화) 등 수상작가들과 박대성·강남미씨 등 신진 동양화가들이 각광을 받았지요. 새해에도 이들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근래 지속적인 현상의 하나지만 과거의 근대미술을 현대의 시각으로 정리하고 재조명하는 회고전이 작년에 꾸준히 열렸는데 이런 것은 고무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야하지 않을까요? 새해에도 바람직한 방향일 것 같아요.
이=물론입니다. 특히 국립 현대미술관의 자치적 기획전인 김종영(조각) 김기창(동양화)씨 등의 회고전은 이제까지 근대 미술을 총결산하고 그럼으로써 앞으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한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특히「판화 드로잉 대전」을 지적하고 싶어요.「드로잉」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도모하고 판화라는 새로운「장르」에 대한 평가를 우리 나라에서도 받아들여 일반인들의 인식을 높이는데 큰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반응도 좋았구요. 이런 것들이 화단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킨다고 볼 때 판화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오=「판화 드로잉 대전」이후로도 판화전이 왕성했지요. 공간사가 주최한「소형 판화 국제전」같은 것은 상당히 흥미를 끌었어요.
이처럼 회화의 주변요소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국제적으로도 주류가 없이 침체돼 있다는 사실과 그 안에서라도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강구해보려는 추세와 연결이 되는게 아닌가 싶어요. 화단이 잠잠한 것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모색의 몸부림을 한 것이라고 볼 때 새해 화단에 자극을 주지 않을까 봅니다.
이=새로운「이슈」는 없었지만 내실화의 움직임은 화단 저변에 깔려 있지요.
「호텔신라」에서 열렸던「야외 조각전」역시 그러한 시도 자체가 조각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해 주었다고 볼 수 있어요.
지난 미술계 동태로 보아 앞으로 본질적인 것과 대결하려는 자세가 다져진 것 같습니다.
오=이제 지난해에 나타난 분야별 문제점들을 중심으로 앞으로 미술계의 나아갈 방향을 살펴보기로 하죠.
근래에 조각 분야가 상당히 의욕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지요. 작품 역시 계속 대형화의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형화에는 일장일단이 있어요. 잘못하면 재료 자체가 지니고 있는 조형미를 상실할 우려가 있어요. 이점에 대한 검토와 고려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소프트·스컬처(연체조각)」즉 물렁물렁한 형태로만 나아가고 있는 것이 문젭니다.
국전도 마찬가지지만 근래에 활기를 띠고 있는 각 민전에서도 발상·기법 등에 있어「유형화」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이점은 크게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오=회화분야에 있어서 집단개성은 크게 효과를 보았지요. 그런데 그 집단 개성속에서도 각자의 고유한 개별성이 나타나야하는데 그것이 안되고 있어요.
특히 동양화는 순수회화 중 가장 침체된 분야인데 동양화가 희화로서 해결해야할 문제도를 작가들이 풀어나가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전통 양식에의 안주에서 벗어나 작가정신을 표현해야겠어요.
이=서양 화단에서 두드러진 현장으로 사회적 기능을 주장하는 부류가 나타나고 있어요.
이처럼 여러 가지 시각들이 다양하게 묘여 화단을 구조적으로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모색돼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덧붙여, 올해부터 신문도 증면이 됐고 하니 미술「저널리즘」의 무책임성도 시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원칙적으로 신인 등용문은 민전이 돼야합니다.
그런데 이 민전이 너무 동시에 쏟아져 나왔고 출품 작가나 심사위원은 제한돼 있어 각 전시회의 독자적인 성격이 흐려지고 있어요. 올해는 민전의 제도적인 정비가 필요할 것 같아요.
이=국립 현대미술관의 자치적인 기획전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해요. 현대 미술의 주도적 입장에 서서 활발한 활동을 펴나갈 것을 기대합니다.<정리=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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