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 졸업반의 고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상아탑-. 고귀한 이상과 의연한 진리탐구, 젊은 낭만의 대명사이던 「대학」을 언제부터인가 확실치는 않지만 자타가 이미 그렇게 부르질 않고 있다. 나라 안팎의 격동과 각박한 현실은 「대학」을 학문과 진리의 고고한 도장으로 놓아두질 않았다. 내외적 이해의 발자국들이 짙은 음영을 드리우면서 대화의 단절, 가치의 방황, 양심의 갈등 따위의 진통을 겪기도 했다. 10·26사태 이후의 정치·사회적 변혁을 외부적 환경으로 돌리더라도 과외금지·졸업정원제·등록금의 대폭인상 등 교육제도의 개혁이라는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난 대학가에는 그러나 여느 때처럼 학생들은 책가방을 옆에 끼고 강의실과 도서관을 드나들고 「캠퍼스」잔디 밭에 옹기종기 모이기도 하고있다. 휴강이다, 휴교다 하는 바람에 모자라는 수업 일수를 채우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방학을 잃은 대학·대학생-. 그들에겐 무엇보다도 절박해진「생활」이라는 현실에 직면해있다. 그리고 그 「현실」을 타개하려는 안간힘 때문에 대학가의 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편집자 주>
작년 11월 둘째 일요일 어느 대학교 강의실. 창문을 타고 들어온 늦가을 햇볕 속에서 정장을 한 학생들이 답안 작성에 여념이 없다. 모 대기업의 취직 시험장. 이 빠진 자리가 서 너 군데 있었지만 1백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은 꽉 찼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실제 취직이 된 학생은 네 명 뿐. 평균경쟁률은 30대1.

<인력의 평가절하>
작년처럼 각 기업이 불황에 시달렸던 때는 드물었다. 그리고 그 여파로 「구인난」이 「취직난」으로 바뀌면서 대학사회에서도 고급인력의 「평가절하」와 「인플레」현상이 심화되기에 이르렀다.
『교수들을 찾는 학생들 가운데는 장래 진로문제를 상의하는 학생들이 제일 많습니다. 경제 현실이 어려워지니까 이 문제가 학생들에게 더욱 절실해지는 것 같습니다.』 대학생들의 고민을 김경응 교수(한양대 학생지도 상담실장)는 이렇게 현실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취직의 문이 좁아지니까 대학원 진학이나 해외유학·고시준비 등으로 탈출구를 찾는 경향이 늘었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지난 연말 치렀던 대학원 석사과정 시험에는 정원 2천3백5명에 8천6백45명의 지원자가 몰려 3.75대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지난해 같은 정원을 놓고 7천1백89명의 지원자가 몰렸던 것에 비하면 지망자는 크게 늘어난 셈이다. 이대의 경우도 대학원 정원이 올해 3백46명이 더 많아지기는 했지만 지망자는 작년의 5백55명에서 8백34명으로 늘었다.
서울대학교 어느 사회과학 학과의 경우는 올해 졸업생 16명 가운데 14명이 대학원을 지망하는 기현상(?)까지 빚고있다.
당국이 「해외유학에 관한 규정」을 완화함으로써 유학이 학생들 사이에 화제로 오르는 빈도가 높아졌다. 79연만해도 1천2백20명이던 우리나라의 해외유학생이 작년에는 11월말 현재 2천명을 넘어섰다. 『저희 대학의 경우, 주로 미국대학을 중심으로 각 대학 요람과 유학절차에 관한 책들을 4백여 종을 유학 상담실에 비치해 놓고 있는데, 하루에 10명 정도의 학생들이 찾아와 자료를 보곤 합니다』고 서현재씨(연세대 학생 상담소)의 말이다.

<16명중 14명 진학>
고시의 문이 넓어지면서 고시 지망자도 늘었다. 『서둘러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많아져 법대학생 중 10명에 네명 정도던 고시 준비생이 6명 정도로 늘었다』 (안주채·단국대 행정학과 조교)는 말 외에도 단국대의 경우 고시지망생을 위한 장학생 선발시험에 재작년 40∼50명밖에 안되던 지원자가 지난 연말에는 2백명을 넘어섰다.
몇년전 「유네스코」한위가 조사한 대학생들의 의식 조사에서 본 장래문제가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으로 등장했었다. 그리고 직업선택의 조건으로서 경제적 이유(37.3%) 능력발전과 발휘(25.3%) 사회적 지위(15.7%)를 모범문안으로 내세웠다.
『대학생들이 자기 진로를 결정하는데는 스스로가 학문의 연구과정에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추세와 영합하지 않으려는 갈등이 존재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실리의 추구를 굳이 외면해 버리려는 욕구가 강합니다.』 비교적 학생들과 접촉이 잦은 어느 교수의 말이다.

<시간 더 벌기 위해>
그리나 현실적 제약이 강해지면 기본적인 자세를 앞세우는 이런 주장들도 약해지게 마련이다. 『장래 직업으로 교수직을 택할 결정은 내리지 않았지만 대학원에 갈 생각입니다』(김창기·서울대 3년), 『사회진출의 길이 마땅치 않으니까 시간을 더 갖기 위해 대학원을 오는 학생도 있읍니다』(김기정·서올대 정치학과 조교) ,『그래도 사회적 지위가 높고 보장된 직장이라는 점에서 법관이 되고 싶다는 뜻을 숨길 생각은 없읍니다』 (강주만·경희대 3년). 이렇게 고민의 지렛대를 현실 쪽으로 기울이는 학생도 많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작년 한해 경제상황이 어두워짐으로써 보다 부담스럽게 학생들에게 번져갔던 것이다.
서울대학교 고영복 교수 (사회학)는 『과거도 문제는 있었지만 요즈음 학생들은 학업에 열중하면 바라는 직장과 진학의 길이 열린다는 가능성을 훨씬 좁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하고 『경기의 위축, 사회의 불안정이 학생들의 장래설정을 보다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진로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고민을 설명했다. <장성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