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중심의 자주적 역사 서술|탄신 백주년을 맞는 단재 심채호 선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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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2월 8일에 탄생, 백주년을 맞는 단재 신채호(1880∼1936)는 한말·일제하에 걸쳐서 언론문필가·역사연구가·독립운동가로서 활약하다가 순국한 가장 위대한 「행동하는 지식인」의 한 사람이었다.
거의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남인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난 단재는 1910년까지 국내에 있으며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 등에서의 언론활동을 통하여 민중계몽·자강독립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독립자강운동의 기반으로서 역사의식을 환기시켰다. 19l0년 이후 그는 만주·노령·중국을 전전하며 같은 방법으로 독립운동에 매진하였으며 특히 임시정부에서는 창조파의 맹장으로 활약하였다.
1920년대 후반에 「아나키스트」운동에 참여한 단재는 1928년에 일제에 체포되어 8년간의 옥고를 치른 끝에 1936년 여순 감옥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따라서 그의 생애에서 두드러진 언론문필·역사연구·독립운동은 성격이 다른 것 같이 보이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자강독립·국권회복이라는 점에서 하나로 귀일 되고 있었다.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고 이론에 근거하여 싸우는 행동인 이었다. 그의 행동근거로서의 사상적 바탕은 자기역사에 대한 깊은 신뢰에 있었다. 단재는 안으로 봉건적 사회모순과 밖으로 외세의 침략이라는 민족적 모순을 극복하는 길이 민족적 전통과 역사의 재인식에 있음을 깊이 간파하였다.
단재는 1905년의 국치에 발분, 역사연구를 시작하여『독사신론』을 남겼고, 이 무렵 「역사와 애국심과의 관계」등 역사에 관한 많은 논설을 썼다.
나라가 망한 후 옛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인 만주를 답사하며 국권회복의식을 심화시킨 후, 1920년대에 가서 『조선상고사』『조선상고문화사』『조선사연구초』등을 남겼다. 이러한 그의 저술들은 『단재 신채호전집』(전 4권)에 수록돼 있다. 그의 역사학의 특징은 한말 자강·영웅사상에 근거하여 출발하였으나, 차차 민중 중심으로 전환되었다. 그는 사대주의와 노예성에 근거한 유교사학을 비판하고, 실학시대의 사학과 비유가사학을 비판적으로 수용, 우리 역사학의 폭과 질을 높였다. 그는 우리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대외투쟁에 있어서 자주성을 강조하는 역사학을 제창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을 펴기 위하여, 그는 종래 유교사가들이 주장한 신라와 한반도 중심의 한국사 체계를, 단군에서 부여·고구려로 계승되는 체계로 전환시켰으며, 이에 따라 한국고대사의 영역을 폭넓게 확대시켰던 것이다.
특히 그의 역사학에서 강조되어야 할 점은 한국의 역사학을 의리론·천명론·정통론 중심의 중세적 역사학에서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지으란 것이요… 객관적으로 사회의 유동상태와 거기서 발생한 사실을 그대로 적는』근대적 역사과학에로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이제 그의 탄생 1백주년을 맞아, 우리는 민족적 모순이 격렬했던 시기에 뚜렷한 역사 의식과 불굴의 지조를 지니며 격동기를 살아간 한 선구자를 생각한다.
그의 역사의식은 우리 역사의 방향이 민족·민중중심의 자유·평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의 지조는 일제는 물론 그 밖의 반민족적·반민중적 세력과의 어떠한 타협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단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더 철저한 의식과 무거운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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