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닝함 공개했으니 미, 항모 기술 보여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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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우성리(吳勝利) 중국 해군 사령관이 8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조너선 그리너트 미 해군 작전부장을 만나 항모 운용 기술 견학을 요청했다. 중국의 첫 항모 랴오닝(遼寧)함에 배정된 장교들이 미 항모 기술학교에서 정비·운용 절차를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도록 견학 기회를 달라는 내용이다.

 겉으로는 양국 군사 협력을 내세웠지만 속에는 중국의 다목적 대미 전략이 숨어 있다. 우선 항모 기술 습득이다. 랴오닝함은 2012년 9월 취역했지만 함재기 이·착륙 성공 외에는 실전 전술이나 기술이 부족하다. 특히 중국 항모는 갑판 활주로에서 이륙 속도를 높여주는 사출 장치가 없어 미 항모가 운영하는 전자기 사출 장치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미 항모 기술학교 견학이 허용되면 초보적 사출 장치 제작과 운영 기술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올 4월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에게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랴오닝함을 공개한 것도 이 같은 항모 기술 확보 전략과 맞물려 있다. 중국도 항모 수준을 공개했으니 미국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이 우 사령관의 요청을 거부해도 잃을 게 없다는 게 중국의 생각이다. 미국이 입만 열면 미·중 군사 협력을 얘기하면서 행동은 다르다는 점을 국제 사회에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면 그 책임을 미국에 돌릴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신형대국관계’ 구축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중국의 판단이다. 중국군은 지난해부터 신형대국관계의 핵심은 ‘신형군사관계’라고 강조하고 양국 군사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사상 처음으로 6월 26일부터 한 달여간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림팩) 합동군사훈련에 참가했다. 이 훈련에는 23개국이 참가했는데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4척의 군함과 함재 헬기 2대, 특전·잠수부대 등 병력을 파견했다. 중국은 항모 기술 견학을 내세워 미국에 신형대국관계 형성에 필요한 군사 협력과 신뢰 구축을 받아들이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스티브 코언 전 미 해군연구소장은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중국의 호전적이고 강압적인 태도 때문에 아시아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장교들이 미국 항모에 오르게 된다면 중국이 얻어갈 이익이 미국보다 훨씬 크다”며 중국의 요구를 일축했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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