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대북 접근법 … 정부 "5·24 해제 논의할 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박근혜 대통령의 북한 접근법이 달라졌다. 11일 남북 고위급 회담 카드는 예고 없이 이뤄졌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북한에 먼저 고위급 회담을 제안한 건 처음이다. 그만큼 적극적이다. 지난 2월 열렸던 남북 고위급 회담은 북한이 먼저 제의했었다.

특히 통일준비위원회 첫 회의(7일)가 열린 지 나흘 만이다. 박 대통령은 통준위 회의에서 “정부의 목표는 북한 고립이 아니다”고 강조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회담 제의가 박 대통령이 지난 3월 28일 밝혔던 드레스덴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한 “첫 삽”이라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연초 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론으로 분위기를 잡은 뒤 독일 방문에서 드레스덴 구상을 공개했다. 이미 이때부터 남북관계 진전에 속력을 내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4월 16일)로 제동이 걸렸다. 넉 달 가까운 시간을 그냥 보내야 했다.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 구상에 불을 지필 시점이 지금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7·30 재·보선 승리로 국정운영에 동력을 얻었고, 집권 2년차도 후반기로 가고 있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상황도 맞물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북한 응원단이 참여하는 인천 아시안게임 등으로 이어지는 남북 관계 개선 분위기도 영향을 줬다고 한다.

 고위급 회담이 이뤄지면 드레스덴 구상의 현실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드레스덴 구상은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대북 민생인프라 구축 ▶인도적 문제 해결이 골자다. 정부는 고위급 회담을 제안하면서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비롯한 쌍방의 관심 사항을 논의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드레스덴 구상의 핵심은 동질성 회복과 북한 주민의 인도적 문제 해결인 만큼 박 대통령은 이 문제부터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한 국제 공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남북한 교류를 점차 확대해 나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드레스덴 구상을 일단 현실화시키되 북핵 문제에 진전이 있다면 대대적인 경협단계로 돌입하는 ‘단계적 관계 개선’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북측이 요구하고 있는 5·24 조치(천안함 사건 이후 취한 포괄적인 대북 제재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 당국자는 “특정 의제는 안 된다고 배제하지 않는다. 북측이 제기하면 충분히 논의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전에 선을 그었던 것과 달리 유연한 입장을 견지한 것은 그만큼 회담을 성사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번 고위급 회담이 성사될 경우 우리 측에선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나설 예정이다. 북측이 지난 2월처럼 원동연 통일선전부 부부장(장관급)이 나설 경우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간 간접 대화가 이뤄지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사흘 뒤 8·15 경축사를 발표한다. 통상 8·15 경축사에는 북한 문제와 관련한 언급이 담기곤 한다. 정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직접 육성으로 북한에 대해 진전된 제안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도 전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7·30 재·보선 승리로 자신감을 얻은 박 대통령이 본격적인 대북 행보에 나선 것으로 ‘대북 관계의 출발점’이란 의미가 있다”며 “그동안 우리 정부는 원칙을 많이 따졌는데 이번에는 상당한 유연성을 갖고 회담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용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