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2만5550바퀴 달린 서울지하철 … 껌값만 5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총 운행 거리는 지구를 2만5550바퀴를 돈 것과 맞먹는 10억2200만㎞. 누적 승객 559억5000만명. 승무원이 졸지 않도록 지급한 껌 값만 5억6000만원….’

 오는 15일로 개통 40주년을 맞는 서울 지하철이 쌓은 기록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은 1974년 8월 15일 오전 11시20분 서울역을 향해 청량리역을 출발하면서 운행을 시작했다. 당시 철도청은 신문에 이런 글귀가 쓰인 광고를 냄으로써 지하철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스피디한 都市交通 時代(도시교통 시대)’.

 지하철은 40개월 공사 기간 동안 근로자 7명이 숨지고 200여 명이 다친 끝에 개통됐다. 당시 기본요금은 30원이었다. 현재 현금 운임(1150원)의 약 40분의 1이다. 그렇게 시작한 총 길이 9.5㎞ 지하철은 현재 9호선까지 총 연장 327.1㎞로 확장됐다. 하루 평균 승객은 74년 23만 명에서 724만5000명으로 31.5배가 됐다. 현재는 2호선 강남역 한 곳의 하루 이용객이 13만6000명에 이른다. 개통 당시 하루 승객의 절반이 넘는 숫자가 강남역을 드나들고 있는 셈이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노선은 매일 208만 명이 타고내리는 2호선이고, 제일 인적이 드문(?) 노선은 24만4000명이 이용하는 8호선이다. 서울 지하철의 수송 분담률은 36%. 3분의 1 이상의 시민이 교통 수단으로 지하철을 택한다는 뜻이다. 9호선까지 계속 건설된 지하철은 개발 붐을 일으켰다. 편리한 교통 때문에 지하철역 인근엔 쇼핑타운과 사무실, 주택가가 들어서고 부동산 값이 뛰었다. 지하철 건설 계획은 부동산 투자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알고 싶어하는 정보였다.

 지하철은 인연을 맺는 장소도 됐다. 다음은 올초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 메트로가 누적 이용객 400억 명 돌파를 기념해 실시한 공모전에 이수철(39·교사)씨가 보내 우수상을 받은 이용 수기다. “교통 정체를 피하기 위해 늘 자가용 대신 지하철을 탔다. 상왕십리역에서 2호선을 타고 시청역에서 1호선을 갈아탄 뒤 대방역까지 갔다. 시청역에서는 앞에서 네번째 열차의 맨 뒷문을 이용했다. 언제부턴가 대방역에서 내리는 이상형의 아가씨가 눈에 띄었다. 6개월쯤 뒤 지하철이 고장나 노량진역에서 내려야 했다. 택시를 타려는데 아가씨가 말을 걸었다. ‘대방역 가시죠. 같이 타고 가실래요’라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이웃학교 교사였다. 그 뒤 자연스런 만남이 이어지다 결혼에 골인했다.”

 승무원들에게 껌은 1996년부터 지급했다. 철도에 비해 그리 길지 않은 구간을 반복 운행하다보니 단조로움 때문에 졸음이 올 수 있어서다. 승무원들이 졸음방지용으로 씹는 껌은 한 해 11만 통을 넘는다. 개통 초기부터 준 게 아니었건만, 지금까지 지급한 껌이 총 200여만 통, 5억6000만원 어치에 이른다.

 서울 지하철은 개발도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수년 전부터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각국에서 서울 지하철을 찾아 운영 시스템을 돌아보고 갔다. 지난해 12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시장 등이 서울 지하철을 찾았다. 메카를 중심으로 한 6개 광역철도사업을 추진하기에 앞서 방문한 것이다. 이어 올초엔 메카 지역 광역철도 건설회사 임원들이 방한해 각종 시설을 둘러봤다.

 서울 지하철은 앞으로도 계속 확장될 예정이다. 5호선은 상일동 역에서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검단산 입구까지를 연장한다. 또 시기는 미정이지만 중앙보훈병원에서 고덕·강일지구까지 9호선을 3.8㎞ 연장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서울시는 앞으로 5년 내에 도시철도 기본계획안에 지하철망 확충 방안을 만들어 담는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안전 확보와 만성 적자는 해묵은 과제로 남아 있다. 지난해 5월엔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열차가 추돌해 240명이 다쳤다. 또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 메트로만 지난해 1300억원 적자를 냈다.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3조3300억원에 이른다.

  전익진·임명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