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사…』-김일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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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G형.
불교에서는 사부대중이라 하여 입산인 인 비구승 비구니와 재가인 인 청신사 청신녀를 함께 소중스레 다루고 있음은 익히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특히 여신도는 「보살님」이라는 성스런 명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 옛날 어느 때부터 인지는 모르나, 아마 절을 보살펴 주심이 그만큼 지극 정성이었던 탓일 테지요. 따라서 우리나라 불교계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신도들인 만큼 이 보살님들의 힘이야말로 「중과 대」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G형.
먹물 옷 입은 저에게 사람들은 가끔 말을 걸어옵니다. 그 중에서도 누군가가(물론 여성) 『절에 다닙니다』하는 말일 경우에는 나는 무작정 <그럼 어떤「케이스」의 보살님?>하고 머릿속 바퀴를 콱 밀어보는 죄스런 버릇이 있습니다. 보살님들 상이 너무너무 층층으로 돼있기 때문입니다. 백화료난, 바로 그것일 테지요.
그중 몇 토막만을 G형,
「스케치」해 보겠습니다. 물론 보살님들 모습에서입니다.
아득히 50여년전, 서울에서.
정초 불공을 못 가면, 북한의 문수암, 관악의 연주암 같은데서 스님네가 튀각을 지게 하나 가득히 짐꾼에게 지워서 장안 여염집을 돕니다. 대개 무척 추울 때지요.
너무나 부풀어서 날아갈듯이 담겨진 튀각 대신에 그 이남박에다 깨끗한 독 밑 쌀을 가득 담아서는 갖고 온 쌀자루에 부어드립니다. 대화는 거의 없습니다. 신도의 정성과 스님의 합장만이 조용히 교류될 뿐입니다.
혹은 시골 농촌에서-. 시어머니가 절에 가는 특사지요. 정월불공이나 가을 햇곡식 때. 그 얼마전부터 똘똘히 준비했던 차림새로 집을 나섭니다.
쌍을 찧을 때마다 한줌 두줌 모아두었던 계미를 흰 자루에 담아 머리에 이고 스님 드리기 위한 고무신과 차좁쌀 들깨 등 몇 줌은 갸름한 전대 속에 넣어 허리춤에 꽉 묶고서 발걸음 재촉하는 그 마음은 마냥 청정하기만 합니다. 절에 들어서기 그 이전부터 할머니는 벌써 크게 복 받은 마음에 가득 차 있지요.
하나 G형.
요즘 절을 중심한 풍속도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습니다. 이를 저는「절 공해」라고 감히 일컫고 싶습니다.
여기 이 동네서만 보더라도 초하루 초사흘 초이례 등 소위 복 얻기 날이면 새벽4시만 되면 벌써 부르릉 자가용 차 소리가 사뭇 요란합니다. 간혹 여름 새벽 같은 때 나가보면 차 속 아씨님들이 머리털은 어성버성 까치 등지 모습 그대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쩐지 멍청히 바라보게 됩니다.
또한 G형.
고인을 위한 지장재일보다도 관음재일 날에 보살님들은 훨씬 많이 절에 오십니다. 그러고서 남이 꽂아든 멀쩡한 새 초를 불쑥 뽑아 던지고서 자기 것을 꽂아 놓은 것까지는 그래도 별 피해는 없습니다만 그 「내로라」하고 펼쳐하는 절 모습에는 주위사람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크게 넓게 두 팔을 나비처럼 활짝 벌린 다음, 넓죽하게 큰절을 하시되 한껏 궁둥이 폭을 자랑 치듯한 그 모습.
법당 안이 붐빌 경우에는 밖에서 선 채로나마, 공손한 합나례만으로라도 충분히 만족할 줄 아는 아량이 소망스럽습니다.
여기서 G형.
『남이사…』하고 부산 말을 통으로 들고나선 보살님네들을 눈앞으로 그리며, 역시 정답고도 감사스런 눈매를 보내드립니다. 서울말로는, 이 『남이사…』하는 매몰차고도 따스한 말이 없습니다 그려. <수필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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