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육의 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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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하나의 민족이 위기에 직면해서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는 노력을 하게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권 상실을 극복하고 외세의 위협 속에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민족이 자기의 정체를 다시 확인하려고 몸부림쳐 왔던 것도 어쩔 수 없는 당연한 귀결이겠다.
그러니까 우리가 한민족의 양원을 찾고 역사의 맥을 더듬어 우리자신의 존재확인을 학문적으로 확립하려는 노력을 하게되는 것도 또한 당연한 일이며 「한국학」 또는 「한국사」라는 개념설정으로 이들이 하나의 학문영역으로 공인 받아 성장해 온 것도 우리의 존재확인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성립한 「한국사」가 30여년의 성립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만큼 교육현실에서 어떤 형편에 놓였는가 하는 것이 한번쯤 검토되어야할 단계에 온 것 같다.
최근 동국대가 주최한 한 「세미나」가 『한국사 교육의 반성』을 주제로 열렸던 것도 그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한국사 교육의 문제는 여러 각도에서 접근될 수 있으나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는 「민족정체」와 「민족분단의 현실」과 「민주적 인간」의 확인 및 교육이라는 측면을 강조할 밖에 없다.
광복후 한국사가 「사회과」의 일부로 교육되고 73년 정부의 국학진흥책에 따라 독립과목이 된 이래 착실한 성장을 거듭하였다곤 하나 일면 정책과목으로 졸속효과만을 강조한 나머지 내실을 잃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내용상 민족주체의식이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겠으나 국사교과에서 제시되는 민족주의사관은 이제 일제하에서 독립을 목표로 했던 시대의 저항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사관이어서는 안되고 자주적 민족사관이어야겠다. 그것은 합리적 역사학 방법론에 입각한 것이어야 하고 국수주의적인 것이어선 안되겠다.
민족분단의 현실 인식 가운데서 민족의 과제가 국토의 통일임을 주지해야 할뿐 아니라 한편으로 한 울타리 「지구촌」안에 사는 인류의 일원임을 인식하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뿐더러 민족연대의식과 함께 「민주의식」이 강조되어야겠다. 한국사를 통해 민족의 동질성을 밝혀 모든 성원으로 하여금 일체감을 갖게 하는 것은 우리 사회 속에서 각 개인이 스스로의 책임을 분담하고 협력하는 인간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다.
투철한 국가관·민족관이 각 계층의 화합과 결속을 고취하여 조국통일의 이념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으려니와 하나의 공동운명체인 민족이 결코 몇 사람 혹은 일부 계층만을 위해 비합리적으로 운전되고 희생되어선 안 된다는 자각도 얻도록 해야겠다.
그같은 자각이 바로 우리의 또 하나의 당면과제인 「민주」국가 건설에 필수적임은 물론이다.
그런 한국사 교육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몇 가지 구체적 조처가 이루어져야겠다.
한국사에 관련한 학자, 교육학자, 교사가 철저한 사명감 가운데서 함께 협조하는 체제가 있어야 한다. 역사학자는 자기의 독단적인 설을 절대적 교육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며 역사 교육자는 역사학과 역사교육을 연결하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또 교재편찬자 등 교육지도자들은 교과목표를 신념있게 실천하는 역할을 담당해야하며 교사는 사명감을 가지고 교육의 현장에서 열을 올려야겠다.
교과서상의 문제점도 제거되어야겠다. 교과서가 국정으로 단일화되어 있기 때문에 성전처럼 취급되는 경우 사고의 고형화 등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국정·검인정교과서로 다양화할 필요가 있으며 교과서 이외의 학생용 국사사전 등 부교재확보도 시급하다.
특히 고교에서는 한국사 이해를 과학화하기 위해 고전교육이 병행되어야 하며 영문교과에 나오는 정도의 영자사용이 필수적이다.
고교 교과 내용면에서도 현재의 편년사 체제를 분류사 체제로 차차 전환하는 것도 생각함직하며, 「민주적」내용과의 연관을 위해 지배층 중심 기술보다는 민중의 생활사를 구체적으로 부각하는 쪽으로 옮겨갈 만도 하다.
이같은 한국사 교육의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문교당국의 적절한 연구·조처를 기대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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