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테이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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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대통령의 첫 기자회견은 인상적이다. 종례엔 볼 수 없던 광경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부통령과 기자들은「라운드·테이블」에 대좌했다. 단상에 서서 군림하는 대통령과는 다른 모습이다. 「라운드·테이블」은 흔히 국제회의에서 그렇듯이 훈시나 웅변을 토로하는 장치이기보다는 서로 의견을 나누는 대화의 장으로 상징된다.
단상 멘 하의 좌석 배치를 없앤 것은「국민의 눈과 귀와 입」울 대접하는 배려로도 생각된다. 흐뭇한 일이다.
더구나 기자들은 담배를 피울 수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메모」를 하며 주의를 집중하려면 언제 담배를 피워 물 겨를이 없지만, 문제는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기자들이 질문할 때도 일일이 일어나는 번거로움을 피한 것도 역시 이런 분위기의 산물이다.
기자들은『대통령각하』라는 호칭을 별로 쓰지 않았다. 우리 나라의 관례로는 대통령에게만은 각하라는 호칭을 쓰게 되어있다.
그러나 이런 호칭은 자칫하면 관료적인 냄새를 짙게 하는 인상도 없지 않다. 사실 한 나라에서「대통령」이상 가는 직위나 지위가 없고 보면 대통령이라는 그 호칭만으로도 충분한 호칭이 된다. 그런「전칭」에 또 하나의 호칭을 하는 것은 과례 일 수도 있는 것이다.
기자들이 『대통령께서…』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런 뜻에서 오히려 자연스럽고 호감을 갖게 한다.
기자회견에서 마저 「각하」가 남용되고, 「장관님」이란 호칭이 예사로 쓰인다면 어딘지 적막한 느낌이 든다.
우리는 흔히 불경과 자연스러움을 혼동할 때가 있다.
미국 백악관의 기자회견을 보면 분명히 기자들은『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부른다. 존칭임엔 틀림없지만 「유어·엑설런트」(각하)와는 엄연히 구별된다.
「기자」라는 직능은 「무관의 제왕」까지는 몰라도 국민에게 진상을 알린다는 사명과 책임으로 보아 결코 가볍지 않다. 국민이 뽑은 대변자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국민과 국가, 국민과 사회의 관계를 이어주고 이해를 도우며,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그 책무에 있어선 바로 국민의 여망을 업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과 기자가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국민과 자연스립게 대화를 한다는 뜻도 된다.
또 이 세상에 『자연스럽다』는 것처럼 좋은 말은 없다. 모든 문제는 언제나「부자연」에서 일어나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부자연스러울 때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전대통령의 기자회견방식은 새 시대의 자연스러움을 보여 주는 계기이기를 기대하는 소이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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