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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정유 매각 무산시킨 씨티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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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법정관리기업인 인천정유의 매각건을 보자. 지난 1월 중국 국영석유회사인 사이노켐이 인수대상자로 선정돼 투자계약서에 날인하고, 투자총액 6850억원을 예치함으로써 성사 직전까지 갔던 인천정유 매각건은 무담보 정리채권자인 씨티은행이 투자금액의 상향조정을 요구하며 세 차례에 걸쳐 인수에 동의하지 않아 벽에 부닥친 바 있다.

씨티은행의 반대에 대해 해당 재판부 및 산업은행 등 여타 채권자는 보다 확실한 씨티은행의 보증을 요구하고, 재판부는 만약 이러한 보증이 없으면 강제인가에 의해 사이노켐의 인수를 승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와 관련해 정유 경기가 일시적인 호황을 보이자 씨티은행은 인천정유를 직접 인수하겠다고 주장했고, 재판부의 승인을 얻어 두 달간 정밀실사를 거쳤으며 지난 6일 최종 인수 확정가격 및 조건을 재판부에 제출할 예정이었다. 지난 1월 31일 채권자집회 때 재판부는 씨티은행의 최종 인수 확정가격 및 조건이 사이노켐의 조건에 미달하는 경우 사이노켐의 인수를 강제 인가하고, 반대로 씨티은행의 가격.조건이 보다 우월한 경우에는 동 금액을 최저가로 하고 재입찰을 통해 새로운 원매자를 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런데 지난 6일 씨티은행은 어떤 가격 및 조건도 해당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인천정유 매각은 원점에서 다시 표류하는 신세가 되었다.

비록 최근의 원유가 상승에 힘입어 지난해와 올해 흑자를 내고 있지만 불과 2년 전만 해도 인천정유는 만년 적자에 허덕이며 두 차례나 매각이 유찰된 골칫덩어리였다. 이때 중국의 막대한 내수시장을 등에 업은 사이노켐의 입찰 참가에 따라 예상 매각가를 웃도는 가격으로 매각할 수 있게 된 채권자 및 인천정유 관계자들이 크게 안도한 것 또한 사실이다. 더구나 사이노켐은 최대 5억 달러에 이르는 추가 설비투자를 약속하고 투자금액 전액을 자본출자함으로써 인천정유의 정상화에 가장 적합한 인수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상황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씨티은행에 의해 작금의 암울한 현실로 뒤바뀌고 말았다. 만약 씨티은행이 자신이 주장한 대로 사이노켐의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인수를 했다면 모르겠으나 지금의 상황은 씨티은행의 불확실하고 무책임한 행동에 따라 인천정유 및 모든 이해관계자가 피해를 보게 된 것이 사실이다.

주지하시다시피 한국은 지난 15년간 약 2만5000건 이상의 대(對)중국 투자를 해온 바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의 대한국 투자는 하이닉스.쌍용차 등 소수에 불과하고 금액 면에서도 11억 달러 정도에 그쳐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이런 관점에서 약 7억 달러에 이르는 사이노켐의 인천정유 투자는 한.중 간의 균형적 경제교류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북한의 핵위협이 점차 고조되고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 국가가 중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도권에 대한 중국 국영업체의 대규모 투자는 정치적 측면에서도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사이노켐이 인수제안서에서 약속한 바와 같이 5억 달러 이상의 추가 투자 등을 통해 인천정유 설비를 고도화하고 BTX설비 등을 증설하게 되면 지방경제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이미 사이노켐은 기존 노동력에 대해서는 3년간의 고용보장을 약속한 바 있다. 나아가 중국의 폭발적인 내수시장을 이용해 현재 30%대에 불과한 인천정유 가동률을 70%대 이상으로 증대시켜 생산된 정유를 중국 시장에 공급하는 경우 통상 측면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고 할 것이다.

박상은 외교통상부 경제통상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