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 정권교체 여망에 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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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헌법은 국가의 최상위법으로 그 국가운영의 지침이 된다. 그러므로 한나라의 헌법은 그 나라의 얼굴이 되며. 그 나라의 의식구조를 알아낼 수 있다.
제5공화국 헌법안을 보고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느낀 것은 대한민국 건국 후 국민의 여망이 실현되지 못한 많은 문제점과, 건국이래 헌법을 둘러싸고 일어난 모든 분쟁원인을 제거하려는 너무나 강력한 의지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28개조로 구성된 국민의 권리의무(제9조∼37조)를 내용으로 하는 제2장은 과거 어느 헌법에서도 볼 수 있는 주권재민의 원칙을 자세히 나타냈는데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가장 잘한다는「스위스」에 갔다놔도 큰 손색이 없는 국민의 권리조항이다.
그 내용은 인권의 불가침성을 비롯해 행복추구권·양성평등권·구속적부심제·고문의 부당성·연좌제금지·사생활보호·재산권보호·형사피고인의 무죄추정·교육의 전문성·교원의 자위보장·평생교육·근로자의 적정임금·근로삼권의 보장·환경권신설·병역의무로 인한 불이익금지, 그리고 기본권의 본질적 침해금지 등이다.
서구의 일부 법학자 중에는 법이 너무 구체적으로 조문화되면 자승자박할 염려도 있고 또한 그 법을 곧 개정해야하는 필요성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광의의 표현이 좋다는 사람도 있다. 다시 말해 우리 나라 같이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횡포를 경험한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인 법문을 요구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이론을 반대한다. 그러나 법의 집행자가 원래의 법문을 선의로 해석해온 전통이 있는 사회에서는 『코걸이는 코걸이, 귀걸이는 귀걸이인데 왜 조문화할 필요가 있느냐』는 뜻에서 광의의 법조문을 주장한다.
외국 헌법에서 이러한 예를 들면 그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경우다. 영국은 성문화된 헌법이 없다. 영국의 오랜, 역사 가운데 심각한 분쟁이 됐던 문제나 영국사회가 필요한 때에 결정된 헌장이나 법칙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헌법의 효력으로 쓰는 것이다.
그 중요한 것은 l215년의「마그나·카르타」(대헌장)를 비롯해 1628년의 권리청원, 1689년의 권리장전, 1832년의 개혁법칙, 1911년의 의회법칙 등이다.
미국의 헌법은 건국 당시 7개 조항의 국가기본에 관한 구조만 규정하고 그 후 필요할 때마다「개정헌법」이라고 불리는 결의안식의 조문을 뒤에 붙여서 국가의 기본법으로 하고 있다. 미국 건국 2백여년 간에 개정헌법 26개조를 합쳐서 현재 33개 조문으로 되어있다.
미국과 영국의 예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왕으로부터 인간의 권리를 빼앗은 영국의「마그나·카르타」나 남북전쟁 후 전승파가 통과시킨 미국개정 헌법 제13,14,15조를 비롯하여 모든 기본법에 대해 국민이나 집권층이 모두 최상위법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새 헌법은 민주주의의 대본인 삼권분립원칙을 토대로 나라를 통치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들어있다.
제3장에 규정된「정부」에 관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7년 단임제와 이 조항에 대한 개정금지다. 우리 나라는 정치적 의미에서 아직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해본 일이 없다.
혹자는『누가 대통령을 몇 번하든 잘 살게만 해달라』고 말한다. 소박하고 솔직한 시민의 소리라고 할 수도 있으나 동서고금의 철인이나 현실적인 정치학자들까지도 인간사의의 정치적 본질, 인간가치관의 차이 등을 감안할 때 절대권력은 부패하게 마련이라고 지적한다. 또 피지배층과 충돌하게 마련이며 흑백론이 나오게되고 사회의 부조리, 비리가 불가피하게 된다고 말한다. 정치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건인 평화적 정권교체의 기틀을 마련한 점에서 새 헌법의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음은 제5장에 규정된「법원」에 관해 몇 마디 부언하고 싶다. 법원이 양식을 지키고 법원이 독립적 행위를 할 수 있는 나라면 그 나라의 민주주의는 별문제가 없다는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이번 헌법에도 법원의 독립성이 보장되고 대법원장이 일반법관을 임명하는 제도가 갖추어진데 찬사를 보낸다. 그런데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법원의 독립성유지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프랭클린·루스벨트」대통령은 경제불황과 2차 대전 수행 과정에서 대법원판정에게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압력을 가하고 심지어 갈아치우는 일을 한 예가 있다.
일본에서도 정부가 기획하는 큰 공공사업에 몇몇 시민이 반대했을 때 일본법원의 판결이 정부사업에 반대하는, 또는 엄청난 보상을 판결하는 예 때문에 정부와 법원사이에 압력이 있을 때가 많다.
이번 법원의 독립규정은 흠이 없는 거의 완벽한 것이라고 본다.
결론으로 본문 1백31개조 부칙 10개조로 된 새 헌법안은 비교적 구체적이며 강한 의지가 들어있는데 그 특징이 있다고 보겠다.
「10·26」사태 후 여러 곳에서 잡음을 냈을 때나「5·17」후의 분위기에서 정부가 헌법기초를 한다고 할 때 너무 우려를 했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너무 이상적인 면이 있지 않나 하는 염려까지 갖게된다.
사물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려는 사람이외에는 누구나 새 헌법이 완벽하다고 생각할 것으로 믿으며, 집권층과 국민사이의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이 법의 성공여부를 판가름 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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