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문학적 요소를 배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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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동랑 「레퍼터리」극단이 공연하고있는 「마이클·커비」작 김우왕 연출의 『내·물·빛』 (11일까지「드라머·센터」)은 몇 가지 중요한 이유로 한국 연극계의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만하다. 이 공연은 번역극으로서는 세계의 초연이며 특히 우리에게는 전혀 새로운 구조주의연극의 최초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구조주의는 흔히 철학인류학 언어학에서 발전시킨 새로운 이론체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연극에서의 구조주의는 구조자체에 최대의 관심을 갖는 점에서는 공통되지만 구조에 대한 견해는 전혀 달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즉 연극의 구조주의는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모든 연극공연의 일반적·객관적 구조의 원리와「패턴」을 분석하고 그것에 따라서 연극을 만들어가는 일에 전적인 관심을 쏟는다는 것이다.
『내·물·빛』이 보통 연극과 전혀 다른 점은 「스토리」가 제거돼있고 따라서 「플롯」 과 성격창조가 없는 점이다. 오직「드라머」의 기본적인 틀과 역만이 뚜렷하게 나타나있는 것이다. 이것은 연극에서 문학적인 요소를 제거시키고 「드라머」의 순수한 형식적 구조만을 부각시킨다.
이 극은 우선 형식적「패턴」으로서 수색과 도피라는 2개의 「테마」가 각각 8장면씩 교대로 전개된다. 이 2개의「테마」는 한번도 동일한 장면에서 부딪치는 일이 없이 병렬돼 진행되며「액션」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각 장면은 하나의 사진처럼 쟁적인 「이미지」를 던지며 거기에는 주관적인 감정이나 해석이나 의미가 동반되지 않는다. 또한 사건의 배경이나 인물들의 관계가 실명되지 않는다.
또 사실적인 연기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극도로 억제돼 있다. 그러나 관객은 이처럼 구조만의 노출로 생긴 「갭」를 메우기 위해 지적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동원하지 않을 수 없으며 여기에 바로 이 연극이 지닌 매력의 하나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형식적 구조는 2백여 개의 대소도구와 2백60장의 「슬라이드」다.
그것들은 모두 현대인의 생활에 깊이 개입된 것들로서 전자 오락기·자동판매기·「오토바이」·자동차, 심지어 비행기까지 정밀한 기계조작에 의해서 무대에 동원되고 있는 것은 차라리 신기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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