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그 포근한 추억 | 황베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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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아름다움이 있다면 생명과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창조자로부터 축복으로 받은 나의 생명은 자라는 기쁨, 이웃과 사귀는 기쁨, 그리고 자연을 누리는 신비로운 삶을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산골에서 나의 작은 생명이 태어나면서부터 너무도 알뜰한 정성과 사랑이 충만한 보금자리가 마련되었고 그 속에서 나는 아쉬움과 추위를 모르는 따사로운 행복으로 자랐습니다.
토종닭이 모이를 쪼는 마당가에 까치랑 참새가 함께 어울리는 모습, 초여름 싸리울에 나란히 줄을 올려 같이 피는 메꽃·나팔꽃, 텃밭에 푸짐하던 감자·옥수수·마늘·파·호박, 어느 것 하나도 나에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었습니다.
거기에 할머니·할아버지의 홍시 같은 사랑은 내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며 그리움입니다.
어렸을 때 나는 체중이 미달인데다가 자주 경기와 급체로 할머니를 놀라게 해드렸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영하 25도가 넘는 강원도 밤추위를 상관치 않으시고 침술 할머니를 찾아가셨습니다.
내가 다섯살이 되기까지 수 없이 홑이불을 덮어놓고 통곡을 하셨다는 할머니의 얘기를 들으며 자랄 때 나는 그 모든 것이 얼마나한 사랑인지를 몰랐습니다.
금방 꺼낸 달걀을 물 적신 종이로 싸고 마른 종이로 한겹 더 싸서 잿불에 구우신 다음 찬물에 담가 껍질을 벗겨 반을 갈라서 노른자위의 고운 빛깔을 보여주시면서 조금씩 떼어 먹이시던 할머니.
또 새들한 인삼을 먹을 때마다 할머니가 수숫대 하나를 상으로 주시면 장롱밑에 모아두었다가 눈 많이 오는 날 할아버지랑 아랫목에서 만들던 수수깡 안경·물레방아.
봄날 약국길에서 돌아올 때 할머니는 「클로버」 언덕에 나를 앉혀놓고 「클로버」꽃으로 시계·반지·목걸이를 만들어 채우시는가 하면 신작로에 엎드려 공깃돌을 주워서 띠끝에 매달고 오셔서 봉당에 풀어놓곤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늦가을 장날을 골라 지게를 지고 나가시면서 『오늘은 우리 옥련이 겨울양식을 장만하는 날이다』 하시면서 점심 전에 한가마의 밤을 사오셨습니다.
겨우내 날밤·군밤을 흔하게 다 먹고 난뒤 봄이 되면 할머니는 하루 다섯알씩만 주시면서 『이 밤은 고막쥐가 훔쳐가다가 떨어뜨린거야. 이젠 다 먹고 없어』 이런 말씀을 열흘도 넘게 하셨습니다.
타향에서 보낸 세월이 많은 만큼 그리움이 키가 커 파란하늘만 보아도 글썽 눈물지어지는 것은 산골 오두막집의 포근한 추억을 되돌릴 수 없는 아까움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이 다른 무엇보다 고귀한 것은 생명과 사랑의 소중함을 알고 서로를 아끼는 알뜰한 보살핌으로 이루어진 가정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사람이면 누구나가 다 두고 온 고향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간직하면서 곱게곱게 살고있나 봅니다.
요즈음 어린이들이 자란후에도 그리워할 고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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