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병영폭력 … 군의 '셀프 개혁' 에 맡길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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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구타나 집단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총기난사 등 대형사고를 낼 때마다 군은 병영문화 개선방안을 자체적으로 제시해왔다. 1999년 신병영문화 창달방안, 2003년 병영생활 행동강령과 사고예방 종합 대책, 2005년 선진병영문화 비전, 2012년 병영문화선진화 방안 등 다양하다. 하지만 지금 국민을 경악하게 하고 있는 윤 일병 사건은 그간의 대책이 공염불에 그쳤음을 보여준다. 이번 사건으로 선임병이 후임병에게 근무·휴식 시간 구분 없이 부당한 지시를 내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그릇된 병영문화가 뿌리 깊게 잔존해 있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됐다. 그동안 군의 각종 대책들이 효과적이지도 않았고, 발생한 사건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처리하지도 못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따라 폐쇄적이고 내부담합에 치우친 군이 자체적으로 병영문화를 개선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퍼지고 있다. 게다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징집된 신세대 병사를 관리하는 일도 군의 자체 역량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명망가 중심의 민·관·군 혁신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보다 부대 운영에 민간인을 적극 참여시키는 방안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군은 민간인 전문가를 적극 활용해 문제해결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다. 현재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꼽히는 것이 국방옴부즈맨 제도의 도입이다. 독일 연방의회에는 국방옴부즈맨이 설치돼 있다. 군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군을 헌정질서와 민주사회에 통합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일종의 ‘군인 호민관’이다. 연방의회가 선출하는 임기 5년의 국방옴부즈맨은 군인과 군인가족의 청원접수, 부대방문, 자료요청 등을 통해 군인 기본권 향상 업무를 수행한다. 노무현 정권 때인 2005년 우리 군의 특성에 잘 맞는다고 해서 검토한 적이 있는 제도다.

 아울러 군은 시스템·행정·사회·정신의학·심리학 등 각 분야의 외부 전문가 컨설팅도 과감하게 받을 필요가 있다. 작전·정보 등 보안이 필요한 몇몇 고유 임무를 제외하고 나머지 분야는 민간인의 능력과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수용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병영폭력을 줄이려면 인권교육이나 사병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상담이 필요한데, 이는 군 자체 인력으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런 분야부터 과감하게 민간 전문가들에게 개방할 필요가 있다. 보안이 문제된다면 서약서를 쓰고 업무를 맡길 수도 있을 것이다.

 윤 일병 사건은 유례없는 비극이다. 그러나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병영문화를 대폭 수술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이기도 하다. 병사의 생활과 관련한 분야는 민간인이 포함된 감독위원회를 설치해 투명성과 효율을 높여야 한다. 민간 전문가의 수혈은 군 체질강화와 선진화는 물론 군과 민간의 활발한 소통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군을 개혁하지 않으면 국가 안보가 위태로워진다. 가장 민주적인 군대가 가장 강력한 군대라는 금언을 떠올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