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원동 성당은 4일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유묵 ‘敬天(경천)’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에게 전달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의사는 뤼순(旅順) 감옥에 갇혀 순국할 때까지 220여 점의 글을 남겼다고 한다. 그 중 50여 점이 전해지고 있다. 안 의사의 오롯한 정신에 감동한 일본인들이 당시 비단과 종이를 들고 글씨를 받으려고 줄을 섰다고 한다. 그 가운데서도 처형 직전에 일본인의 부탁을 받고 쓴 ‘敬天’은 ‘신앙인 안중근’을 보여주는 아주 드문 작품 중 하나다.
뤼순 감옥 소장의 손자가 보관하고 있던 이 유묵은 20년 전에 처음으로 외부에 알려졌다. 박삼중 스님이 일본을 오가며 소장자를 설득한 끝에 매입했다. 지난 3월 서울옥션 경매장에 7억원에 나왔으나 유찰됐다. 이후 염 추기경의 동생인 염수의 신부가 주임신부를 맡고 있는 잠원동 성당 사목회가 5억여 원에 사들였다.
염 추기경은 “정말 감격스럽고 은혜로운 날이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안 의사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그동안 교회가 안 의사를 잘못 판단한 과오를 인정한 바 있다. 세례명이 토마스인 안 의사는 철저한 신앙인이었다”고 말했다. 박삼중 스님은 “‘敬天’은 하늘을 공경하라는 뜻이다. ‘하늘 무서운 줄 알아라. 동양 평화를 유린하는 너희는 반드시 망하고 만다’는 뜻이 담겼다고 본다. 유묵이 천주교로 가서 대단히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