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바지저고리에 상투틀고 현대를 산다|전북부안군 신선당 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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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니·스커트」시대에 살면서 흰두건·흰바지로 나들이하며 장가를 가야 상투를 틀수 있는 이색마을이 있다.
마을안 서당에서는 젊은이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한문을 배운다.
전북부안군산내면 곰소항에서 서북쪽으로 4km, 여기서 산길을따라 12km를 오른곳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의 풍경이다.
「시운기화유불선동서학합 일대도대명다경대길유도갱정교화일심」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긴이름(?)의 종교를 믿는 마을이다.
해발 4백m. 산허리에는 구름이 띠를 둘렀고 동네에는 약초냄새가 물씬 풍긴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총각들이 천연스레 외래객을 맞는다.
새벽4시면 일어나 집집마다 향을 사르고 경을 읽는다. 아침밥을 먹고나면 어른들은 밭으로 나가고 어린이들은 서당에 가는등 일반사회와 다름없다.
다만 일터로 나간 어른들은 밀짚모자대신 흰두건을 썼고, 「러닝셔츠」가 아닌 한복 흰저고리, 잠방이나 반바지대신 흰바지,「슬리퍼」나 농구화·운동화대신 흰고무신을 신었다. 어린이들은 수염이 허연 훈장앞에 꿇어앉아 한문공부를 하고있다.
속칭 「신선당」로 불리는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21년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2대교주 서계용씨(71)가 2명의 제자를 데리고 자리를 잡은 곳이다.
부안군을 비롯, 가까운 곳에서 신도들이 모여들었다.
지금은 7가구 35명이 살고있지만 7∼8년전만해도 26가구 l백30여명이 살았다.
처음엔 3만평의 산을 개간, 약초를 재배, 생활필수품과 교환했으나 지금은 뽕밭1만5천여평을 가꿔 가구당 연간 70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얼마되지 않은 수입이지만 식량과 부식일체를 자급자족하기 때문에 돈쓸일이 없다.
2대교주 서씨가 3년전 지리산 청학동으로 떠난다음 제주와 동네지도자를 겸하고 있는 은지균씨(55)는 28자나되는 긴 이름을 가진 이 종교의 교리는 60년전 교주인 강대성씨 일가족이 득도한 유·불·선을 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술은 마시되 담배는 피우지 못하고 돼지고기와 쇠고기등 육류는 먹어도 되지만 「보신탕」은 먹을 수 없도록 계율도 꽤 까다롭다. 또 제사가 1년에 31번이나 된다.
제사때는 해인경이라는 경서를 읽고 나라걱정은 물론 가족·친척의 평화를 기도하며 반드시 신도들이 함께 태극기를 게양하는 의식을 갖는 철저히 폐쇄된 마을이다.
20년전 이곳에 왔다는 김룡호씨는 『도둑도, 싸움질도 없는 마을이 바로 이곳』이라고 했다. 맑은 공기속에 산채를 먹으면서 살다보니 모든 사람의 마음이 맑아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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