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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캉스」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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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불어로 『노동』은 「트라바유」(TRAVAIL)라고 한다. 이 말에는 또 『고역』 이라는 뜻이 있다.
고대 「로마」시대에 게으름보를 벌주는데 쓴 「트리파리옴」이란 형구에서 나왔다.
중세에는 교회에 잘못을 저지른 죄인에게 이로 먼 곳 사원을 다녀오는 것을 「트라바유」라 했다.
여기서『여행』을 뜻하는 영어의 TRAVEL이 생겼다. 그만큼 여행은 지겹고 고통스런 것이었다. 19세기까지도 그랬다.
「모차르트」와「슈베르트」가 여행 다닐 때 반드시 가지고 다녀야 했던 게 초(초)였다. 물이 나쁘니까 물속에 초를 타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숙박시설도 엉망이었다. 때로는 성벽밖에 천막을 치고 자야했다.
물론 음식도 엉망이었다. 음식점이 일반화된 것도「프랑스」혁명으로 귀족집 요리수들이 실업한 다음부터 였다.
도로사정도 형편없었다. 잘못하면 길복판의 웅덩이에 빠져 죽는 수도 있었다.
그런 길을 마차를 타자면『엉덩이는 「프라티나」제. 내장은 동제, 가슴은 청동제』이어야 견딜만했다.
「나폴레옹」도 「파리」에서「리옹」으로 가는 도중에 마차가 전복하여 창 밖으로 간신히 끌려 나온 적도 있었다.
게다가 도적이 뒤끓고 있었다. 그래서 저녁에 으슥한 곳을 지날 때는 오히려 마차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게 더 안전했다.
그러면서도 「유럽」사람들은 여행을 즐겼다. 「바하」,「쇼팽」,「모차르트」「몽테스키외」,「괴테」….모두가 거의 한 평생을 나그네길에서 보냈다.
현대의 서구인들이 「바캉스」를 으례 여행으로 즐기려는 것도 이런 옛 버릇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바캉스」여행이 유행인 것은 뭣 보다도 얼마든지 싸구려 여행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니스」·「칸」과 같은 지중해연안은 호화피서지로 유명하지만 사실은「캠핑·카」로 자취하며 즐기는 서민가족들이 더 많다.
싸고도 좋은「호텔」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파리」의 「샐러리맨」들이 온 식구를 거느리고 4주씩이나 「바캉스」를 즐기고도 끄떡도 없다.
지난 주말은 서울이 텅 비다시피 했다. 지루하던 장마도 걷혀 모두가「바캉스」여행으로 떠났는가 보다.
나가면 고생이다. 바가지 요금에 불편한 교통, 불쾌한 숙박시설...
별게 아니다. 그저 돈 뿌리러나가는 것이다. 뭣 보다도 서민층을 위한 관광시설이 엉망인 것이다.
그래도 싸게 그러나 보람 있게「바캉스」여행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의 참뜻을 살릴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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