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현 "기적 날 것 같아" 이정현 "나 떨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윤상현 새누리당 사무총장=“형, 기적 날 것 같아.”

 ▶이정현 전남 순천-곡성 새누리당 후보=“나 떨려.”

 지난달 30일 오후 9시52분. 7·30 재·보궐선거 개표 진행 상황을 지켜보던 당시 윤 총장(지난달 31일 사퇴)은 이 당선자와 이런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이 당선자와 윤 전 총장은 2004년부터 10년 이상 박 대통령 곁을 지킨 친박 핵심이다. 나이는 이 당선자(56)가 윤 전 총장(52)보다 많다.

 이 당선자는 개표 초반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크게 앞섰다. 고향인 곡성의 투표함을 먼저 개표한 것도 한 이유였다. 곡성은 61.1%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그중 70.1%를 고향 사람 이정현 당선자에게 몰아줬다. 하지만 여야 모두 “개표 초반인 만큼 순천을 열어 봐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서 후보의 출신지인 순천에서도 이 당선자는 뒤지지 않았다. 개표 2시간여가 흐른 즈음 이 당선자가 승기를 굳혔다.

 재·보선을 이끈 윤 전 총장이었지만 이 상황이 믿기 어려웠다. 수차례의 여론조사에서 이 당선자가 앞섰으나 당선 가능성에선 서 후보에게 한참 뒤졌다. 투표 당일 이 지역 지인들이 “일 나겠다”며 승리 가능성을 전해 왔음에도 확신이 안 섰다. 하지만 이 당선자는 한순간도 선두를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윤 전 총장은 “기적이 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거다. 이 당선자가 “떨린다”고 하자 윤 전 총장은 “대장이 놀라시겠어”란 문자를 날렸다. 대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가리킨다. 그들은 사석에서 박 대통령을 ‘대장’이라 부르곤 했다. 이 당선자가 승리한 데에는 윤 전 총장의 역할이 컸다는 평이 나온다. 그중 첫 번째가 ‘권은희 때리기’였다. 권 후보가 공천되자 윤 전 총장은 권 후보를 물고 늘어졌는데, 이게 다 작전이었던 셈이다. 또 정당 조직이 아닌 저변의 이정현 지지세력을 확보한 것도 큰 힘이 됐다. 윤 전 총장은 비공식적으로 선거기간 순천-곡성을 몇 차례 찾았다. 평소 친분이 있던 지역 명망가들을 만나 “당 생각 말고 사람만 보고 이정현을 한번 밀어 달라”고 부탁했다. 폭탄주 수십 잔을 마셨고 큰절도 했다. 당내에선 “두 ‘왕의 남자’가 호남에서 기적을 일궜다”는 얘기가 나온다. 선거기간 ‘예산 폭탄론’을 투하했던 이 당선자는 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와 함께 예결위에 배치됐다. 박 대통령은 이날 김무성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재·보선 압승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이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