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설봉 전택보 사장의 천복을 빌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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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설봉 전택보 사장! 언제나 편안하고 정정하던 설봉이 순시에 왕생을 하시다니-허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구려. 생자는 필멸이란 말이 있지만, 자당 훈도로 7세에 입신하여 80평생을 하느님 뜻을 따라 살아온 설봉은 틀림없이 영생의 천복을 누릴 것으로 기원하오.
YMCA를 전화에서 재건하고, 부녀사업·아동복지사업·교회와 기독교 교육 사업에서 한시도 손을 뗀 일이 없었던 설봉 이야말로 재난이 겹쳤던 이 나라의 목자였소.
「이만큼 살아오는 동안 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졌다. 그 빚을 갚을 길은 내가 눈을 감을 때까지 일을 계속하는 것이라」는 설봉의 술회가 생각나오. 설봉의 이러한 확고한 신앙은 설봉의 80평생을 정진과 봉사로 일관하게 하였소.
천우사를 설립하여 이 나라 해외 무역의 선구자가 되었고, 건국 후 최초의 무역 사절로 동남아 시장을 개척했으며, 무역협회·상공회의소·경제인 연합회 등 경제 단체를 이끌어 경제계의 힘을 국가발전에 집약시켰소. 이러한 선구자적 봉사 활동은 세상으로 하여금 설봉을 신상이라 칭송케 해왔소.
그뿐입니까. 교육계·언론계에 딱한 일이 생기면 언제나 숨은 지원의 손길을 뻗쳤고, 조림을 위한 「포플러 심기 운동부터, 낙농 육성을 위한 한정 협회의 설립, 노동력의 활용을 위한 보세 가공의 선도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가 잘 되는 일이라면 혼신의 정성을 다하여 봉사를 아끼지 않았소.
「나는 보잘 것은 없지만 일생동안 내가 가진 능력과 지식을 모두 짜내어 살아왔다. 다시 태어나더라도 내가 살아왔던 대로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설봉의 글을 읽은 일이 있소.
지성껏,「타고난 모든 것을 짜내어」, 80년의 영광된 생애를 설봉은 살아왔소. 설봉처럼 성실하고, 설봉처럼 열심히, 그리고 설봉처럼 봉사의 일념으로 생을 시종 한다는 것은, 천복 아니곤 불가능한 일이오.
설봉 전택보 사장! 하늘나라의 안식을 누리소서.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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