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창의력 말살한 「체제문화」 40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애정물 등 탐독, 축구에 열광하는 도피문화 판쳐>

<60연대엔 「문제작품」 판금 해제했지만 출판실적은 부진>
내란에서 승리한「프랑크」세력은 마치 적지를 점령하듯 대학과 출판사, 신문과 기타 문학기관들을 점령했다.
그리고 그 위에다 「나치」의 지도원칙을 본 뜬 전체주의 정치이론을 뒤집어씌움으로써 공화정으로 한 때 싹텄던 자유주의의 순을 꺾으려했다.
이 이론에 따라 민주주의란 「건전한 육신」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배척되어야 할「병균」으로 취급하는 수사학이 정부선전을 통해 범람하기 시작했다.
1943년에 제정 된「대학조직법」은 대학교육이「가톨릭」교리와 「팔랑헤」운동의 「정치적 정신」에 바탕을 두어야 되며 모든 학생은 정부가 조직한 유일한 학생단체 「S·E·U」에 자동 가입하게 했다.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활동에 있어서는 사전검열제를 엄격히 실시했다.
검열은 모든 작품에서 정치성을 배제하려는 정부의 검열과「부도덕성」을 감시하는 교회의 검열이 병행되었다.
국민의 마음을 통제하려는 그런 검열은 때로 소극을 자아내기도 했다.
예컨대 외국영화에 나오는 사랑의 삼각관계는 번역과정에서 누이동생과의 관계로 바뀌어지고 「죄지은 자」는 「호랑이에 잡혀 먹였다」는 원문에 없는 말을 삽입함으로써 주제를 체제가 규정한 「권선징악」의 틀에 맞추었다.
신문도 여인의 사진을 실을 때 「바스트」 부분에 검은 칠을 하여 작게 만든 후에야 인쇄할 수 있게 했다.
이런 문학의 통제에 병행해서 「프랑코」정권은 구호의 나열로 된 체제문화를 보급시키려 했다.
그것을 요즘 사람들은 「수사학 문화」라고 부르고 있다. 인위적인 규율에 얽매인 문화, 동어 반복적이고 모든 창의력을 말살하는 문화란 뜻이다.
그런 문학의 진공상태 속에서 1940년 대 이래 「스페인」에는 소위「노점문학」「도피문학」이라는 것이 성행했다.
문학작품에서 현실을 빼버리고 성을 배제하여 남은 것은 「카우보이」·순정소설·「드릴러」물 등 노점에서 싸구려로 팔리는 작품만이 성행하게 되었다는 데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마드리드」에 10만 명을 수용하는 축구경기장이 세워지면서 축구는 투우를 능가하는 국기가 되었고 축구강의열광은 곧 애국심과 결부되어 황막한 현실세계를 잊게 하는 「도피문화」의 핵심을 이루었다.
또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극장이 많은 나라가 되었다. 소설가 「호세프·프라」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모두들 입을 헤벌리고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는 모습 그것이 오늘의 「스페인」 문화다.』
이 시기에도 소수 양식 있는 작가들은 수유와 상징적 표현으로 교묘하게 검열관의 눈을 속인 작품들을 조심스럽게 발표했지만 주인공을 광인이나 봉사로 등장시킴으로써 그들이 살고있는 「스페인」사회의 고통과 암흑을 상징했다.
이런 암흑기는 그러나「프랑코」가 사망하기 전에 그쳤다. 단순한 노동집약적·산업으로 국가경제가 영위됐던 때는 그런 1차원적 문화로도 사회가 움직여졌지만 공업이 발달, 다양화되고 이를 ▲뒷받침할 교육받은 노동력이 필요해짐에 따라, 또 관광객의 쇄도와 무역거래의 확산으로 「스페인」사람과 「유럽」사람들 간의 관계가 넓어짐에 따라 문학의 자유화가 불가피해졌다.
1962년 공보상이 된 「프라가」는 조심스럽게 자유화를 단행해 그때까지 판금 되었던 「카뮈」 「사르트르」 「마르쿠제」 「그람시」 등의 책들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해외망명 작가들의 책들도 국내에 은밀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75년 「프랑코」가 사망했을 때 문학 면에서는 정치면에 비해 「억압후의 해방」과 같은 격렬한 변화가 없었다.
『「프랑코」때 볼 수 있던 책이나 그 후에 볼 수 있는 책이 다를 게 없다』고 한 대학생은 말했다.
출판물의 수량도 그런 완만한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프랑코」가 죽은 해인 75년 「스페인」에서 출판 된 신간서적은 2만3천 종이었는데 그 다음해의 출판 수는 겨우 l천 종이 불어난 2만4천 종이었고 그 후도 이 수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사람도 있다.
즉 「프랑코」시대의 노골적인 정부선전과 수사학적 문화에 대한 모든 국민들의 불신감이 문자에 대한 불신감으로 일반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는 4O년 독재의 상처가 쉽게 아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학 면에서 다시 민족적 창의력의 샘이 솟고 이를 올바로 감상할 수 있는 민중수준의 문학의식이 회복되려면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프랑코」가 죽은 지 4년이 지났는데도 「베스트셀러」 1위가 영국작가「그레이엄·그린」의『인간적 요인』이라는 사실이 그런 우려를 실증하는지도 모른다.
【런던=장두성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