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알맹이 궁금한 프랑코 회고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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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절대권력의 상징으로서의「프랑코」는 밀려나고 있지만 그의 행적을 감싸고 있는「베일」 의 장막을 벗기려는 일반의 관심은 지금 높아가고 있다.
그것은 40년 동안 국민의 외면생활 뿐 아니라 내면생활까지도 거의 완벽하게 통제했던 이 독재자의 통치시기를 역사의 평면에서 평가하고 일종의 심판을 내리려는「스페인」국민들의 관심에서 우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관심은 지금「프랑코」가 남기고 간 한권의 회고록에 쓸려있다.
그 원고는「프랑코」의 미망인이 보관하고 있고 이에 대한 처분권은 그의 사위가 쥐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자가「마드리드」를 방문했을 때 그는『이 회고록을 출판하는데 반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어렵다』는 모호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공보성의 한 관리는 이 회고록의 출판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는 유가족들이 자신들에 대한 불미스러운 부분이 있는지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가족관계 이외의 부분이 혹시 미화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 있는 듯 하며 이 회고록이 원고의 원형대로 출간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프랑코」는 외국지도자와의 회담이나 중요한 정책결정을 내릴 때 정부 수뇌급에 알리는 어떤 행정절차도 마련하지 않고 정보를 독점했었다.
그래서 통치 40년 동안에 있었던 모든 중요문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은「프랑코」한사람 뿐이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각료들까지도 자기분야에 해당되는 부분만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회고록이 나으면 어둠에 싸였던 지난40년간의 역사가 밝혀지는 것이라고 공보성의 이 관리는 주장했다.
아무리 철저한 독재자라지만 그처럼 오랫동안 한나라의 역사를 독점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수긍이 가지 않았지만「프랑코」의 경우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스페인」국민들이 궁금해하는「프랑코」의 행적은 수없이 많겠지만 그 중에서 두드러진 것은 내란 때에 맺었던「히틀러」와「프랑코」간의 동맹관계의 내막과 2차대전후「프랑코」에 구원의 손길을 뻗었던 미국관계라고 한다.
이 두 관계는「프랑코」독재가 장수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전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프랑코」는 2차 대전 중「파시스트」세력에 병력을 참여시키지는 않았지만「히틀러」「뭇솔리니」와의 결탁이 두드러졌었기 때문에 두「파시스트」세력이 패망했을 때「프랑코」도 따라서 몰락하리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었고 망명반대파들의 염원이었다.
「포츠담」회담에서 미·영·소는「스페인」이 민주화될 때까지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자는 합의를 했고「유엔」도「런던」에서 열린 최초의 총회에서 이 합의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합의는 냉전의 먹구름이 짙게 깔리면서「이베리아」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인식됨에 따라 우야무야 되어 버렸다.
몰락이 확실시 됐던「프랑코」는 냉전의 덕분에 되살아났고 해외에서「프랑코」의 멸망을 학수고대하던 망명정객들은 또 한번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냉전의 한쪽 주역 미국이었다.
1951년 미국의회는「스페인」에 6천5백만「달러」의 차관을 승인해줌으로써「프랑코」와의 밀월시대를 열었다.
이어 1953년 9월에는 미·「스페인」경제·군사조약이 체결되고 미군기지와 원자탄 저장소가 전후의 국제고아였던「스페인」땅 위에 서게 되었다.
망명정치인들은 자기들이 집권할 경우 이 조약을 폐기하겠다고 소리쳤지만 미국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로부터 10년 동안 미국은「스페인」에 20억「달러」의 원조를 제공했다.
또 30만「스페인」군대는 미국이 제공하는 무기로 무장되고 훈련되었다.
원조 뒤에는 미국회사의 투자가 따랐고 그 뒤에는 다른 서구국가들의 경제진출이 따라「프랑코」후기의 번영에 토대를 제공했다.
그러니까『「프랑코」의 두 번 째 위기를 구해준 미국과「프랑코」사이에 어떤 비밀협정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고 의미 있는 말을 한「마드리드」의 한 지식인의 관심은「프랑코」회고록을 기다리는「스페인」사람들의 폭넓은 호기심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리고「스페인」에 팽배해있는 듯한 반미 감정에 대한 설명도 될 듯 하다.
「마드리드」의 거리를 지나다가 어느 담벽에『「양키」와 빨갱이를 잡아먹자』는 낙서를 보았다.
『빨갱이와「양키」』는 상극인데 둘을 같은 통속으로 모는 사람은 누구일까 하고「스페인」언론인 한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극우주의자』들이라는 대답이었다.
지금은 극우파 쪽에서 민주화작업의 배후조종세력은 미국이라고 믿고 미국을「빨갱이」와 함께 모는 것 같다는 것이다.
우파와 좌파로부터 다같이 이 미움을 사고있는 미국을「프랑코」는 회고록에서 친구로 보았을까 적으로 보았을까 모두들 궁금해하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런던 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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