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2심 선고 앞두고 … 4대 종교 지도자 탄원서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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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음모 혐의로 항소심 결심공판을 앞두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에 대해 4대 종단 지도자들이 이례적으로 탄원서를 제출했다. 재판 결과에 대한 직접적인 선처 호소인지, 아니면 구속자 가족의 부탁에 따른 종교인의 인도주의적 제안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27일 “탄원서 제출은 ‘내란음모 구속자 가족대책위원회’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지난 3일 구속자 가족 5명이 서울 명동의 추기경 집무실에서 염수정 추기경을 만나 그간의 심정을 설명하고 탄원서 제출을 요청했다. 구속자 가족대책위는 미리 준비해온 탄원서를 내놓았다. 다음의 내용이었다. “전염이 두려워 나병 환자들에게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을 때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종교인의 사명이다. 누가 어떤 죄를 범했든 도움을 요청하면 그 죄를 묻지 않고 구원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이 종교인의 마음과 자세다. 소위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된 7명의 피고인들에게도 우리 사회의 화해와 통합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 것을 요청드린다.”

 당시 염 추기경은 즉답도 서명도 하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난 뒤 염 추기경은 구속자 가족대책위에서 전달받은 탄원서 문구 대신에 자신이 작성한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저는 법 전문가가 아니라 단언하여 말씀드릴 수 없다. 다만 귀 재판부가 법의 원칙에 따라 바르고 공정한 재판을 해주시기를 기도하며 동시에 그들이 우리 사회의 한 일원으로 화해와 통합, 평화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청한다”는 내용이다.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김영주 총무, 원불교 남궁성 교정원장 등은 구속자 가족을 만나지 않고 전달받은 탄원서에 서명을 해서 구속자 대책위에 전달했다. 조계종 관계자는 “석방 호소냐 아니냐가 아니라 국민통합을 위해 종교인이 던지는 일반적 차원의 인도주의적 메시지로 봐달라”고 설명했다. 천주교 측은 “탄원서에 죄인이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이 담긴 것은 아니다. 가족의 아픔과 화합을 위한 순수한 인도주의적 차원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 의원에 대한 선처 요구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검찰 관계자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경우 다른 공안사범들과 비교해도 사안이 훨씬 중대하다. 종교계에서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유무죄에 대한 사실심 판단이 아직 안 끝난 상태에서 종교지도자들이 탄원서를 낸 것은 사실상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안 그래도 많은 부담 속에 판결해야 하는 재판부에 또 다른 압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희대 송재룡(사회학과) 교수는 “가족의 인간적 호소에 부응하는 것이 종교의 기능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의 탄원서가 재판부의 객관적 판단에 영향을 미쳐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28일 항소심 심리를 모두 마치고 다음 달 11일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최현철·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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