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유보에 정부 개입할 근거 없어 … 구조조정 병행이 필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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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호 06면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0일 중소기업 현장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인천남동공단을 방문해 제품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사회=정부가 재정·금융·세제를 총동원해 내수 활성화에 나섰다. 한국식 아베노믹스가 시작됐다는 평가도 있다.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보나.

[전문가 진단] 최경환 경제팀의 7·24 경기부양책

 ▶성태윤=경기 침체가 장기화됐고, 소비와 투자 위축이 심각하다. 소비가 늘어야 투자도 활발해진다. 그러려면 가처분소득이 늘어야 한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을 가처분소득 증대로 잡은 것은 방향을 제대로 설정한 것이다. 경기가 좋지 않은데 경기가 좋다거나 혹은 나쁘지 않다고 말하면 가계나 기업은 ‘당국이 경기 대응을 안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경기가 나쁘고 적극 대응하겠다고 표명하는 게 중요하다.

 ▶김성태=경제주체의 심리를 바꿔 주고, 뭔가 살아난다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내수 활성화 정책이 변화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 가계소비가 늘려면 자산과 소득이 뒷받침돼야 한다. 풀기로 한 돈 11조7000억원 중 절반 이상인 6조원이 국민주택기금이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도 완화했다. 모두 부동산 활성화로 가계의 부(wealth), 즉 자산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근로소득증대세제·기업소득환류세제(사내유보금 과세) 같은 가계소득을 직접 지원하는 정책도 만들었다. 그동안 부동산은 버블 문제 때문에 손대지 못한 측면 있었는데 이번에 건드렸다. 소득 지원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이렇게 정부가 확실하게 치고 나오는 것 자체가 경기 변화를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기업 과세, 일자리로 연결될 지 의문
▶사회=사내유보금 과세는 이중과세라는 반발이 있다. 기업의 현금자산 보유 비율은 한국이 5.7% 정도로 미국 8.6%, 일본 9.0%보다 낮다. 이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는 걸 어떻게 봐야 하나.

 ▶성=법인세 내고 남은 부분에 추가 과세하겠다는 애초의 안은 이중과세였다. 이번에 들고 나온 기업소득환류세제는 이중과세라는 문제 소지를 상당히 없앴고, 내용도 완화했다. 중요한 건 실효성이다. 기업에 페널티를 준다고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중과세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도 정책 효과는 없을 것으로 본다. 2000년대 초반에 미국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홈랜드 인베스트먼트(Homeland Investment) 정책을 추진했다.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해 번 돈을 미국으로 가져와 투자를 살리고 내수를 일으키자는 정책이었다. 나중에 MIT 등에서 이 정책의 효과를 연구했더니 세제 혜택 때문에 미국으로 자금은 들어왔으나 투자에 안 쓰이고 주로 배당에 쓰였다. 가처분소득을 늘려 줄 임금과 일자리로 연결되지 않은 것이다.

 ▶김=사내유보금을 어느 정도 남겨 둘 것인지는 기업 고유의 경영활동이다. 정부가 개입할 근거가 전혀 없다. 대차대조표에는 투자를 해도 사내유보금으로 잡힌다. 쌓아 둔 돈이 다 현금도 아닐뿐더러 그걸 구분해 내는 작업도 힘들다. 그 행정비용으로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 기업의 심리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접근 방법이 옳지 않다. 옳고 그름을 떠난다 해도 과세 자체가 쉽지 않다. 죽은 이슈라고 본다. 규제를 풀고 앞으로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줘 기업이 투자에 나서게 하는 게 중요하다.

 ▶사회=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은 안 했지만 나랏돈 씀씀이에 대한 걱정이 많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조정해 손뼉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정부는 추경 편성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쓸 수 있는 돈은 다 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개인적으로 추경에 반대한다. 추경 효과는 4분기 이후 나오기 때문에 그럴 바엔 내년 예산에 정확하게 반영해 쓰는 게 맞다. 정책 효과를 높이려면 금리 인하 같은 통화정책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 향후 통화정책이 이번 경제운용정책에 어느 정도 화답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화 부문에서 화답이 없으면 원화 강세는 가속화될 것이다. 이번 정책으로 집행되는 돈이 대부분 정책자금이기 때문에 이들이 민간자본을 오히려 구축(驅逐)할 가능성도 있다. 중앙은행과의 조율이 과제로 남았다.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2분기에 성장률이 나빠졌지만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 경기 살리기에 나설 상황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 등이 터지면서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위축이 크니까 강도 높은 정책을 내놨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제 구조개혁이다. 구조개혁은 경기가 안 좋을 때는 못한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상황이 계속 안 좋다 보니 단기 기업 지원이 많았다. 분석해 보면 외환위기 이후 줄어들던 부실기업 수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경기를 살리려면 다른 한편으로 구조개혁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기업들이 구조조정되지 않는 한 건강한 투자가 이뤄지기 어렵고 자원 배분도 왜곡된다.

 ▶사회=우리나라도 일본식 장기불황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김=1990년대 초반 일본이 장기불황에 접어들었을 때 정책 당국은 단순한 경기 사이클상의 과정이라고 잘못 판단했다. 그러다 보니 구조개혁 시기를 놓쳤다. 이후 뒤늦게 구조개혁정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통화정책 사이드에서 손을 놓으니 재정정책 의존도가 높아졌다. 정부 빚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구조개혁이라는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이 나온 배경이다. 이 화살이 나오는 데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우리 경제도 90년대 초반 일본과 유사한 상황이다.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소비가 줄고 있다. 은퇴 후 예상되는 잔존 생존기가 길어지는 이상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중요한 차이점도 있다. 통화정책이 답답하긴 해도 타이밍을 놓친 정도는 아니고 나라 곳간에 여력도 있다. 더구나 바로 옆 나라가 장기침체에 빠지는 걸 생생히 봤다. 그런 길을 가지 않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활발히 투자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그런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성=일본이 장기불황에 들어갈 때 많이 얘기된 게 인구구조다. 물론 소비를 위축시킨 건 사실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현재도 그 인구구조는 그대로다. 그렇지만 아베노믹스 이후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사람들이 어떠한 기대를 형성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투자가 이뤄지고 새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수출 대기업이 국내에 투자를 안 하는 건 문제다. 일본이 20년 장기불황에 돌입할 때 학자들이 가장 많이 비판한 대목이 일본은행의 소극적 대응이었다. 일본은행은 당시 경기 침체가 구조적 문제라며 단기 대응을 안 했다. 그러니 엔화 고평가 상태가 지속됐다. 제조업 입장에서는 고령화사회에 환율까지 나쁘니 외국에 공장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고용이 줄고 내수는 더 침체됐다. 적극적으로 환율 방어를 안 한 일본은행의 실패를 답습해선 안 된다.

대기업, 국내 투자 안 하는 건 문제
▶사회=이번 대책이 실패할 경우엔 어떤 문제가 생길 것인가.

 ▶김=어떤 부양책도 지속가능한 정책은 없다. 경기주체의 심리를 살리고 치고 올라가자는 취지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이번 정책이 실패한다면 단기 부양의 효과가 끝난 뒤 성장세가 다시 밋밋해질 것이다. 성공의 경우는 두 가지로 나눠 봐야 한다. 당장 내수 활성화만 목표로 한다면 성공할 것이다. 잠깐 반등의 가능성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3년 뒤 우리 경제의 모습이 어떨 것이냐를 성공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장담할 수 없다. 새 경제팀이 경기 활성화와 동시에 경제 구조개혁에 착수하느냐에 달려 있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성공한 경제정책이란 기업이 적정하게 투자하고, 가계도 아주 침체하지 않을 정도로 소비하고, 정부는 적당한 인플레이션 관리로 침체를 막으면서 세금을 걷어 빠듯하게 살림을 운영하는 정도일 것이다. 새 경제팀의 성패는 이런 흐름을 만들 구조개혁의 초석을 놓았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

 ▶성=투자 활성화 얘기가 나오면 규제 완화를 얘기하는데 규제는 완화와 강화 모두 필요하다. 안전이라든지 생명과 관련된 규제는 강화하는 것이 추가 수요를 만들어 낸다. 다만 특정한 업종의 진입을 막는 형태의 규제, 기술 혁신과 관련된 규제는 푸는 게 맞다. 이런 노력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그레이트 모더레이션(대안정기·Great Moderation)’이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비용이 적게 드는 이머징 국가들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제조기지 없이 소비만 하면서 부채가 늘었고 저성장 덫에 빠졌다. 안정적 인플레이션 관리로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금융 부문은 건전성을 잃지 않도록 규제해야 한다. 그래야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지지 않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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