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건설 지보제 개선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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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은행장들마다 가시방석에 앉은 불안을 고백하고 있다. 담보도 없는, 신용대출이나 마찬가지인 해외 건설업체에 대한 지급보증 규모가 엄청나게 불어나 만일 건설업체에 탈이 생기면 은행까지 뿌리가 흔들릴 위험을 안고있기 때문이다.
8일 금융계에 따르면 건설업체의 해외공사 지급 보증잔액은 천억「달러」를 넘어섰고 이미 부도를 냈거나 부실 공사로 인해 지급보증을 선 은행이 대신 물어준 돈만 해도 약8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은행의 경우 지급보증을 서주려면 몇 달씩 걸려서 철저한 신용조사를 거치고 수수료도 지급 보증액의 2∼3%씩 받고 있으나 우리나라 은행의 경우 1주일 이내에 거의 자동적으로 해주는 데다 수수료도 0.2%에 불과하면서 이 같은 엄청난 은행손실을 입어온 것이다.
특히 중동「러시」가 한창 극에 달했던 78년에 지급보증을 서준 공사중의 상당수가 무리한 과당경쟁과「덤핑」수주 결과로 인한 후유증이 점차 은행 지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각 시중 은행장들은 최근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 ①건설부의 지급보증 요청이 있으면 1주일 이내에 은행이 의사통보를 하지 않을 경우 이의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해외 건설 촉진법상의 실질적인 강제규정을 철폐해 줄 것과 ②지급 보증에 따른 은행손실을 보전해줄 기금 마련을 관계당국에 강력히 요구해왔었다.「이 같은 은행들의 요구에 대해 재무부와 건설부는 우선 해외건설 촉진법상의 지급보증에 대한 강제조항은 철폐키로 이미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항상 건설업체의 편만 들어오던 건설부도 그 동안의 해외건설업체에 대한 지급보증에 다소 무리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은행측의 요구를 감안해 빠른 시일 안에 은행 지보에 따른 손실을 보전해 줄 기금을 마련토록 할 방침이다.
이 기금은 현재 국내 건설공사의 지급보증에 대해 일정 한도를 설정해 은행손실을 보상해주고 있는 건설 공제조합의 성격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건설업체 측에서는 ①가뜩이나 해외건설 경기가 나빠지고 있는 형편에 건설업체들이 기금에 출연할 자금 여력이 없으며 ②오히려 은행이 현재 설정하고 있는 자기자본에 대한 지급보증 한도제를 모두 없애줄 것과 ③그 대신 한도의 기준을 해외 건설 수주 실적 등에 따라 대폭 늘려달라고 요구하고있다.
그러나 은행감독원 관계자는 그 동안의 무리한 지급보증 때문에 은행 경영이 크게 위협받는 한계점에 와있다는 판단아래 지난해부터 해외 건설업체의 경우 자기자본의 최고 7백20%(특별한도 포함)까지 한도를 설정했다고 밝히고 은행입장으로는 오히려 더 엄격히 해야 할 처지이므로 현행 한도제를 철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은행 감독원의 생각은 자기자본 규모가 바로 그 기업의 재무구조의 충실도를 나타내는 것이니 만큼 더 많은 지보를 원하는 기업은 당연히 자기자본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뭏든 해외건설을 통해 외화를 많이 벌어오는 일도 중요하지만 은행이 자기자본금보다 큰 규모의 지급보증을 더 이상 함부로 서줄 수는 없다는 것이 초조해진 시중 은행장들의 공통된「마지노」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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