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알렌·꿈 같은 사랑 … 경찰, 유씨 단서 흘려 넘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12일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박윤석씨가 22일 오전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 야산의 매실밭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순천=프리랜서 오종찬]

발견되고 40일. 유병언(73) 청해진해운 회장의 시신 신원을 확인하는 데는 이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발견 장소가 유 회장이 숨어 있던 전남 순천시의 별장 부근이고, 시신 옆에서 ‘ASA 스쿠알렌’ 등 유 회장과 관련된 물품들이 발견됐는데도 그랬다. 경찰의 초기 대응이 미흡해서였다. 유 회장일 가능성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고 단순한 변사 사건 다루듯 했다.

 시신과 주변엔 신분증은 물론 신용카드 같은 것이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지문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려 했으나 부패가 심해 일단 실패했다. 그러자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분석을 의뢰해 놓고 그저 기다렸다. 옷과 소지품 등을 통해 단서를 찾으려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았다. 시신 곁에 놓인 가방엔 ‘꿈 같은 사랑’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유 회장이 쓴 책 제목이다. 그는 블로그를 통해 “내가 가장 많이 들춰본 책”이라며 “내 생애를 바꾼 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한 책 안에 정확히 표현해 놓았다”고 소개했다. 함께 빈 병 상태로 발견된 ‘ASA스쿠알렌’은 유 회장 측근이 대표인 한국제약에서 만드는 제품이다. 이런 점에 주목했다면 국과수에 DNA를 다른 샘플보다 먼저 검사해 달라고 요청, 신원 확인 기간을 줄였을 수 있을 터다.

 옷 등을 조사하지도 않았다. 입고 있던 점퍼는 최고급 명품 브랜드인 이탈리아 ‘로로피아나’ 제품이다. 사망자가 예사로운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러나 경찰은 이런 기초적인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22일 직위해제된 우형호 순천경찰서장 역시 “유류품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조사했더라면 확인이 더 빨랐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ASA 스쿠알렌이나 ‘꿈 같은 사랑’이란 문구가 유 회장과 관련됐다는 것을 DNA 확인 뒤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제대로 수사하지 않아 국가 행정력이 한 달 이상 낭비됐다”는 질책에 대해서는 “완벽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했다.

순천=최경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