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은 뒷전 개성을 중시"|80년대 국내외의 새경향…「해방패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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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가을부터 「파리」와「뉴욕」에서 연달아 열리고 있는 80년「패션·쇼」들은 몇 년 전과는 확실히 다른「새로운 현상」이 이제 완연히 자리잡고 있음을 알려준다. 전 세계 1급 「디자이너」들 약 2백명이 내놓은「80년 의상」들은 한마디로 『개성의 일반학』. 저마다 다르고 옷마다 다른 전혀 어떤 기준이나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이를 가리켜 전문가들은 『해방「패션」』이라 불렀다. 몇몇의「디자이너」들에 이끌려『올해의 유행은…』하고 따라갔던 시대는 이제 사라졌다.
『누구나 입는 사람이 자기의 옷을 선택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러나 오늘에는 실천적으로 옷을 선택하는「개성주의」가 일반화했다. 옷 길이나「스타일」·색채·옷감종류에 전혀 구애되지 않는 자유로운 다양한 옷들을「디자이너」마다 각양각색으로 선을 보인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다 내보였다』며 「디자이너」들마다 어느 해보다 더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고객의 개성을 어떻게 따라가느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누구를 따라서 싫어도 억지로 안 맞아도 참으며 옷을 입으려 하지 않는다. 일하고 생활해 나가기도 어려운데 옷에까지 구속을 받는다는 것은 낭비다」- 의상 평론가며 유명한「바이어」인 미국의「매기·린지」여사의 말이다. 「뉴욕」의 최고급 상점「헨리·반넬」사장「제럴딘·스타츠」여사는『오늘의 여성들은 어느 때보다 자신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누가 이걸 입으라고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냥 다양하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이「선택」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디자이너」「할스턴」도『우리가 봐도 놀랄 정도로 옷 잘 입는 여성이 많이 늘어났다』면서 이제「디자이너」가 그들을 따라 갈 판이라고 했다.
80년대 이런 해방「패션」을 주도하는 여성들은 옷의 선택에서 첫째 자기의 개성과 분위기를 제일로 친다. 거기에「입고 싶은 스타일」을 덧붙일 정도.
특히 직장 여성들과 고급 고객들은『질 나쁜 옷은 낭비』라면서 옷 가지수는 적더라도 개성을 살리는 고급 옷을 선택하는 경향. 어느 때보다「디자이너」들이 어렵게 됐다고 말한다. 「편안하고 질 좋은 옷」에다 각자의 개성에 맞추어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80년대는 적어도「패션」에 있어선 독재가 없다. 한가지「스타일」로는 고객을 부를 수 없다.』화장품회사「레블론」의 기획관「애니트·골든」은 화장품까지도「유행」이 없이 다양하게 재료만 제시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도 최근 4,5년 사이 고급 기성복을 내는「패션」가가 형성됐고 또 이러한 해방「패션」의 경향이 서서히 번져가고 있다.
「디자이너」이신우씨는『여러 사람에게 다 좋은 옷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이제「디자이너」들 자신이 개성을 내보여야 할 때』라고 말한다. 고객들이「디자이너」의 개성을 보고 자신의 개성과 분위기·취향에 맞는가에 따라 선택한다는 추세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올해는 어떤 유행의 선이 없다. 자유로운 개성의 기성복들이 점점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몇몇 고급 기성복 점에선 독창적인 옷감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으며 기성복이 일반화함에 따라 각 상점의 특징과 수준이 확연히 구분돼 가고 있는 실정이다. <외지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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