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드라마」의 활로 열어 특집극 『해바라기』를 듣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작금 우리 방송이 지닌 문제점을 몇 마디로 요약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른바 「TV시대」의 개막이후 방송의 공과나 역기능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논의돼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곧바로 TV적 병폐나 역할 및 영향력과 관계되고 상대적으로는「라디오」매체의 위축과 소외와 깊은 관련을 맺고있다.
그만큼 TV매체의 출현이후 「라디오」는 그것을 찾는 청취자에게 몰락의식을 주어왔고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리만을 전달수단으로 삼는 청각매체의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통념상 가장 호소력이 강한「드라마」의 측면에선 TV와「라디오」는 상대가 안되는「게임」이라고 「라디오·드라마」의 자연도태설까지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난 3월1일부터 사흘간 TBC 「라디오」가 방송한 3·1절 특집극 3부작 『해바라기』(기기팔극본·박량원연출)는 바로 이런 점에서 TV의 그 어느 특집극보다 큰 의미를 지녔던 것 같다.
우선 이「드라마」에선 우리가 걸어온 하나의 역사성을 현실적 비만상황에 놓고 진한 참여의식을 외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시대의 변화속에 판단조차 흐려진 원인과 결과에 대한 책임소재를 부감해보려는 진지성은「라디오」보다 더 많은 부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TV 「드라마」가 벽에 부닥치는 요소들을 자체 연소시키려는 의도와 함께 비교적 과감하고 진지한데가 있었던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었다.
두드러진 주제의식에 비해 구성장의 기교적인 면과 지나칠 정도로 고전적인 「드라마·트루기」를 존중한듯한 일면도 잔재주나 기교만능주의와「아이디얼리즘」에 젖어온 우리들에게 향수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번「라디오」특집극 『해바라기』의 기회는 방송「드라마」의 활성화를 위한 정통성의 회복과 자극의 불씨가 되고 할말을 하면서 발전하는 방송의 「이미지」를 새로 심었다는 점에 영가의 근거를 두고싶다. 신상일<방송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