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유…「인기작가」만 초대|상업성 과시한 봄 화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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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부분의 화랑들이 아직 새봄의 개관을 주춤하고있는 상태에서 굵직굵직한 몇몇 화랑에서는 화려한 기획초대전으로 불황타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들 유수의 화랑들이 내건 올봄의 기획전은 한결같이 동·서양화의「중진작가초대전」.
초대된 작가들도 천편일률적이어서 이른바 인기있는 소수작가의 작품이 이 화랑에도 저 화랑에도 걸려 우리나라 화랑의 무성격성과 상업주의에 민감한 특성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고 있다.
전시일정의 순서대로 올봄 화랑가의 기획전과 초대된 면면들을 훑어 보면, 우선 춘추화랑(한국화랑협회가입화랑)이 지난2일부터 설경전을 열고 있으며 초대작가는 오지호 권옥연 서세옥의 3인. 선화랑은 선미술 창간1주년기념전(5∼11일)을 기획해 동양화의 김기창 민경갑 박노수 서세옥 성재휴 장우성, 서양화의 권옥연 김형화 박영선 오지호 장욱진 황유엽 제씨를 초대.
11∼31일 개관6주년 기념전을 여는「그로리치」화랑의 경우 동양화는 40대를 주축으로 하고 있으나, 서양화의 초대작가는 오지호 장욱진 이준 유경채 권옥연으로 이어진다. 26일부터 개관2주년을 계획하고 있는 예화랑도 중진 인기작가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성자 백영수 황영성 이만익 등 비교적 폭넓은 초대이기는 하지만 「얼굴」로 내놓은 작가는 오지호 장욱진 권옥연 유영국씨 등. 올해 개관10주년을 맞으며 비교적 알찬 전시회를 해왔던 현대화랑도 마찬가지.
동양화초대작가는 장우성 김기창 성재휴 서세옥 박노준 천경자씨로 선화랑과 비교해볼 때 민경갑씨와 천경자씨만 바뀌었을 뿐 다른 5인의 작가는 똑같다.
서양화에는 권옥연 오지호 장욱진 유영국 박고석 윤중식 남관 변종하 문학진씨가 초대작가다. 이 화랑의 경우는 이들 생존작가외에 작고작가 12명의 작품을 초대해 그나마 다른 점을 보여준다.
한편 올봄 5번째로 문을 여는 명동화랑도 개관기념전으로 이들 인기작가들을 끌어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 화랑들의 초대전을 통해 우리나라 화단의 인기작가를 점쳐보면 동양화의 경우는 김기창·장우성 성재휴 서세옥씨 등이며 서양화는 권옥연 장욱진 오지호씨등. 6개 화랑에 빠짐없이 초대된 K씨의 경우 근래 들어 한번도 개인전을 열지 않았던 화가.
화랑들이 이처럼 팔리는 작가에 몰리는 것은 지금까지의 전반적인 추세였지만 올봄에는 더욱 심화된 경향.
올봄에 이렇게 몇몇 작가에게만 쏠리는 것은 무엇보다 불황을 큰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추세로 볼 때 이들의 작품은 그래도 안타를 날릴 수 있다는 「안전성 위주」의 생각 때문으로 추측된다.
불황 속에서도 문을 열어야한다는 어려움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이런 때일수록 화랑들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자기 화랑만의 성격을 갖고 진지한 고객을 찾는데 나서야할 때다.
일시적인 「붐」에 매달리지 말고 화랑은 화랑대로 미술계에 기여해 보겠다는 생각, 작가들은 이 화랑 저 화랑에 끌려 작품을 남발하지 않는다는 작가정신이 긴 안목으로 볼 때 필요한 자세다. <이재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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